메타·MS 뒤쫓는 애플, 도전 예고한 구글·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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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현실세계와 디지털 가상세계가 융합하는 ‘메타버스(Metaverse)’ 시장을 선점하려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 간 경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메타버스 실현을 위한 전제 조건인 하드웨어 플랫폼 개발에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Meta)가 전력 질주하자 애플과 구글이 추격전을 예고했다.
메타는 앞서 경쟁 관계인 마이크로소프트(MS)를 우군으로 삼았고 애플 라이벌인 삼성전자는 구글과 동맹을 맺었다. △메타·MS 연합 △애플 △구글·삼성 등 세 진영이 확장현실(XR·eXtended Reality) 기기 신제품 출시 대열에 뛰어들면서 ‘반짝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받았던 메타버스 시장이 올해 다시 활력을 찾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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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첫 VR 기기 ‘비전 프로’ 공개···내년 미국 출시
애플은 지난 5일 연례 개발자 행사인 ‘세계 개발자 회의(WWDC) 2023’에서 XR 기기 신제품 ‘애플 비전 프로(Apple Vision Pro·이하 비전 프로)’를 공개했다. 비전 프로는 ‘스키 고글’처럼 두 눈을 감싸 정면과 측면에 정보를 표시하는 디스플레이와 자체 프로세서·메모리를 탑재한 본체, 유선으로 연결한 외장 배터리로 구성돼 있다. 착용자가 다른 컴퓨터에 연결하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헤드셋 기기로 설계됐다는 의미다.
이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맥이 개인 컴퓨터,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팅 시대를 연 것처럼 비전 프로는 우리에게 ‘공간 컴퓨팅’을 선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이크 로크웰 애플 기술 개발 그룹 부사장도 “첫 공간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거의 모든 시스템을 새롭게 발명해야 했다”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 긴밀한 통합으로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콤팩트한 형태로 독자적인 공간 컴퓨터를 설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애플이 비전 프로 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상적 편의와 업무 효율을 증대하는 시나리오다. 예를 들어 비전 프로 착용자는 물건이 놓여 있지 않은 빈 책상에 앉아서도 정면에 워드 프로세서를 띄우고 한쪽 옆에 애플의 영상전화 기능인 ‘페이스타임’이나 메신저 기능을 열어 놓은 채 일할 수 있다. 시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무실 모니터로 바뀌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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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만 강조한 건 아니다. 애플은 다음 문구처럼 이 기기가 차원이 다른 여가를 실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두 개를 탑재한 비전 프로를 통해 모든 공간을 100피트(ft·약 30.5m)만 한 화면과 첨단 공간 음향 시스템을 갖춘 개인 영화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중략) 사용자는 원하는 화면 크기로 애플 아케이드 게임 100여 가지를 즐길 수 있다. 이때 환상적인 몰입형 오디오와 인기 게임 컨트롤러도 지원한다.”
다만 과제도 있다. 애플의 시연 영상처럼 비전 프로 착용자가 회사 동료들과 소통하고 협업하거나 가족·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정보를 소비하려면 끊기지 않는 고품질 음성·데이터 통신을 구현하는 고성능 네트워크 기능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비전 프로가 어떤 통신 표준 규격을 지원하고 어느 주파수와 대역폭을 쓰는지 공개되지 않았다. 애플은 아직 미국에서조차 비전 프로 기기에 대한 연방통신위원회(FCC) 인증을 받기 전이라고 말했다.
외신과 인플루언서가 남긴 체험기에서 비전 프로는 주로 뛰어난 디스플레이 화질, 높은 반응 속도 등으로 안정적인 몰입감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기기로 애플이 제공하려는 가치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거나 제품의 높은 가격, 무게, 등은 단점으로 지적됐다. 애플은 2024년 초 온라인 판매점과 미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3499달러(약 457만원)에 비전 프로를 판매할 예정이다.
◆업계 선두 메타, ‘퀘스트 3’ 공개···VR 대중화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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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해 온 메타는 지난 1일 자사 VR 기기 신제품 ‘메타 퀘스트 3’를 공개하고 연내 출시를 예고했다. 이 중 128GB 모델 가격은 500달러로 애플 제품 대비 7분의 1 수준에 불과해 가격적으로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날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퀘스트 3를 소개했다. 그는 “고해상도 컬러 혼합현실(MR·Mixed Reality)을 지원하는 최초의 메인스트림 헤드셋”이며 “독립형 기기로 MR과 VR을 경험하는 최고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퀘스트 3 역시 외부 컴퓨터에 연결하지 않고 내장된 프로세서로 구동된다. 두 눈을 덮는 디스플레이로 입체적인 VR 영상을 표현하고 양손에 쥐는 전용 컨트롤러를 통해 디지털 공간 속에서 행동하고 사물을 조작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메타는 3년 전 출시된 모델 ‘퀘스트 2’보다 이번 제품이 더 편안한 착용감과 뛰어난 화면 해상도, 향상된 성능을 갖췄다고 말했다.
퀘스트 시리즈는 앞서 메타에 인수된 VR 헤드셋 하드웨어 제조사 ‘오큘러스’ 기술에 뿌리를 둔다. 메타는 2014년 인수한 오큘러스 연구 조직을 ‘페이스북 AR·VR팀’으로 편입해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후 AR·VR팀을 2020년 8월 ‘페이스북 리얼리티 랩(현 메타 리얼리티 랩)’이라는 조직으로 재편하고 2021년 10월 기존 사명(페이스북)을 지금처럼 메타로 바꾼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전사적인 메타버스 선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메타는 2020년 10월 퀘스트 2를 출시하고 2021년 말 전 세계 누적 판매량 1000만대를 돌파하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VR 기기’ 제조사가 됐다. 메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한 기기 가격과 비교적 활성화한 VR 앱 생태계가 퀘스트 시리즈의 강점으로 평가된다. 퀘스트 기기로 이용할 수 있는 VR 콘텐츠와 게임 앱은 2019년 5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메타 퀘스트 스토어’를 통해 유통되는데 여기에 현재 VR 앱이 1000여 개 등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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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퀘스트 3 출시 계획은 ‘메타 퀘스트 게이밍 쇼케이스’ 진행 시점에 맞춰 발표됐다. 이 행사는 △액션 RPG ‘아스가르드의 분노 2’ △리듬 게임 ‘삼바 데 아미고’ VR 버전 △일인칭 스포츠 게임 ‘NFL PRO ERA’ 시리즈 △연내 출시를 앞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최초의 VR 게임 등 그간 퀘스트 시리즈용으로 출시·개발된 VR 앱과 현재 주요 파트너사가 개발 중인 프리미엄 게임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메타는 기존 퀘스트 시리즈를 정식 출시한 모든 지역에서 올가을부터 퀘스트 3를 판매할 계획이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프랑스·호주 등 23개국에 이 신제품이 출시된다는 뜻이다. 이미 국내 퀘스트 3 정식 판매가도 책정됐다. 메타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퀘스트 3 가격은 128GB 모델 기준 73만원이다. 메타는 이번 발표 후 기존 퀘스트 2 판매가도 128GB 모델 기준 44만9000원으로 할인했다. 이용자 진입 문턱을 낮춰 보급을 가속화하는 전략이다.
◆메타·MS 연합, 애플 추격···구글·삼성 도전 예고
머리에 착용하는 MR 기기로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애플보다 MS가 한참 먼저 시작했다. MS는 2015년 AR 헤드셋 ‘홀로렌즈’를 처음 선보였고, 2016년 북미 지역 개발자 대상으로 이 기기를 3000달러에 판매했다. 3년 뒤 미국에 출시된 홀로렌즈 2가 이번에 등장한 애플의 비전 프로와 같은 대당 3500달러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MS는 이 기기를 개인 소비자보다 국가·공공 조직과 기업에 보급하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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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렌즈는 VR 기기와 달리 시야가 차단되지 않고 별도 입력장치를 쓸 필요가 없어 두 손이 자유롭다. 이 때문에 산업 현장에선 홀로렌즈 착용자가 바라보는 현실 공간과 사물에 디지털 매뉴얼, 작업 순서나 지침 등 부가 정보를 표현해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는 기업 내부와 산업 현장 센서 데이터, MS의 클라우드 인프라와 업무용 소프트웨어 기술로 실현된다.
MS 홀로렌즈 기술은 미국 방산기업 록히드마틴이 미국항공우주국(NASA) 달착륙 프로젝트 임무 수행을 위한 유인 우주선 제작에 활용됐다. 일본 나가사키대학병원에서 섬 지역 거주 환자를 원격 진료하는 데도 쓰였다. 국내에서는 영상관제 솔루션 기업 이노뎁이 공장이나 공사 현장 시설 관제 솔루션 개발에 3D 지도와 함께 홀로렌즈를 활용했고 에스피테크놀러지가 스마트팩토리 원격 관제와 시각화를 위한 AR 기술에도 적용했다.
MS는 2022년부터 신형 홀로렌즈 하드웨어 공개보다 메타와 전략적 협업을 통해 ‘업무용 메타버스’ 시장을 선점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2022년 10월 메타에서 고성능 VR 기기 ‘퀘스트 프로’를 선보일 때 MS는 메타의 VR 기기를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업무 도구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애플의 비전 프로는 기술적으로 메타의 퀘스트와 MS의 홀로렌즈 시리즈가 보여준 것과 비슷한 기능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플이 이 제품으로 고성능 VR 기기를 원하는 개인 소비자 수요를 공략할지, 산업 현장 작업자나 사무직 업무 효율을 높이는 기업 수요를 공략할지는 불분명하다. 애플이 완전히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지 않는다면 결국 메타버스 시장에서 메타·MS 동맹을 추격하는 후발 주자 신세에 머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메타와 MS는 애플뿐 아니라 다른 추격자를 만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이르면 올해 말 선보일 새로운 XR 기기를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이 신제품은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가운데 구글 운영체제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한국과 미국 특허청에 ‘갤럭시 글라스(Galaxy glasses)’라는 상표를 출원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에서 구글, 퀄컴과 함께 XR 생태계 구축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이 때문에 업계는 구글이 메타버스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우군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글은 2022년 5월 미국 본사에서 개최한 ‘구글 I/O 2022’ 행사를 통해 별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은 AR 글라스 기기의 콘셉트 영상을 시연한 적이 있다. 기존 구글 글라스와 별개인 이 AR 글라스는 주로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실시간 언어 번역으로 의사 소통을 돕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주경제=임민철 기자 imc@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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