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7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어 증언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증인신문에서 여러 차례 본인을 “증인”이 아닌 “피고인”으로 칭해 재판부가 정정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재판장 이종민)는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66차 공판에서 임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임 전 차장은 사법농단 사건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지낸 핵심 인물로 꼽힌다. 사법농단 사건이 재판에 넘겨진 이후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법정에서 대면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임 전 차장은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의 질문 200여 개에 모두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형사소송법 148조는 자신이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 염려될 때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임 전 차장은 양 전 대법원장보다 앞선 2018년 11월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 측 질문에 대한 임 전 차장의 “증언 거부”가 반복되자 박 전 대법관 측은 “(증인이) 모든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나온 이상 하나하나 질문하고 거부하는 것은 소송경제(법원과 당사자가 들이는 비용·노력을 최소화하는 것)상 부적절한 것 같다”며 재판부에 소송지휘권을 발동해달라고 요청했다.
임 전 차장도 “형사소송법상 증인의 출석·증언은 일반 국민으로서 의무이나, 관련 사건 피고인이라는 특수한 지위가 있는 경우 헌법상 진술거부권이 보장된다”며 “둘이 충돌하는 경우 후자가 우월하며, 개인적 의견으로 이처럼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증인신문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증인은 누구보다도 이 사건에 많은 관여도와 책임이 있는 주요 증인”이라며 “본인 재판에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사실관계와 법리적 다툼을 하면서, 이 재판에서는 검찰에서 한 진정성립마저 응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증언거부권이 검사의 질문 자체를 봉쇄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다”며 “검찰의 주요 질문이 무엇이고, 어떤 질문을 증인이 거부했는지 소송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가 증인신문 절차를 진행하기로 한 뒤로도 임 전 차장의 “증언을 거부한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2015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한 게 맞나’ ‘대법원장으로 근무한 양승태 피고인을 잘 아는가’ ‘법원행정처 처장으로 근무한 박병대·고영한 피고인을 보좌하고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한 게 맞는가’ 등 기초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증언 거부로 일관했다.
검찰이 일제 강제징용(강제동원)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 묻자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증인은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계기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결론이 바뀌길 바란 것 아닌가’ 등을 묻는 검찰 질문에 임 전 차장은 “증언을 거부한다”면서도 “검찰의 신문 사항은 검찰의 상상력을 발휘한 질문에 불과하고 증인에겐 그런 의사와 능력이 없다” “검찰의 그런 시각은 플리바게닝에 입각한 주관적 생각”이라고 했다.
임 전 차장이 이날 모든 증언을 거부하자 변호인들은 반대신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재판은 약 2시간 만에 끝났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일제 강제동원 재판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재판에 개입하고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 등으로 2019년 2월 기소됐다. 1심 재판만 4년 넘게 진행 중이고, 공판 횟수는 250회를 넘겼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 증인신문만 남겨두고 이달부터 주 2회 집중 심리에 들어간다. 임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끝나면 결심공판을 거쳐 선고기일을 잡을 예정이다. 1심 선고는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이 계속 증언을 거부할 경우 공판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판부는 “증인이 증언을 전면 거부하면 12회까지 증인신문을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 삼성 27.7% LG 24.9%… 당신의 회사 성별 격차는?
▶ 뉴스 남들보다 깊게 보려면? 점선면을 구독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