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스토킹 적용했어야"… 경찰 소극대응 논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데이트폭력 보복 살해범' 김 모씨가 28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발생한 30대 남성의 연인 살인 사건이 데이트폭력 신고에 불만을 가진 보복범죄로 드러나면서 경찰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경찰이 피해자·피의자 분리 조치와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미흡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서울남부지법은 28일 데이트폭력으로 신고당해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 모씨(33)에 대해 도주 우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오후 2시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서울 금천경찰서를 나선 김씨는 '피해자와 가족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말 죄송하다"며 "평생 속죄하고 살겠다"고 답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6일 오전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연인 사이인 A씨(47)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범행 직전에 A씨의 데이트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나와 A씨를 찾아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살해했고, 범행 직후에는 A씨를 차에 태우고 도주했다가 같은 날 오후 경기 파주시 한 공터에서 긴급 체포됐다. 경찰은 김씨가 타고 있던 차량 뒷좌석에서 A씨 시신을 발견했다.

김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연인 A씨에게 보복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경찰이 피해자 보호 조치에 소홀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재회를 요구하며 피해자 근처에 머물려고 폭력을 저질렀지만 경찰이 이를 단순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해 접근금지 조치와 같은 피해자 보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현행법상 가정폭력과 스토킹 범죄, 아동학대 등에서 접근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지만 연인 사이의 데이트폭력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다만 경찰이 김씨의 행위를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으로 보는 등의 적극적 대처가 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토킹처벌법 등 법률이 마련된 상황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연인 간 다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피의자의 처벌을 원치 않았고, 폭행이 경미해 임의 동행한 김씨의 귀가를 막을 수단이 없었으며, 피해자에게도 스마트워치와 임시 숙소를 권유했지만 거절당해 보호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또한 피해자의 신고 내용만으로는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 사건으로 판단하기 힘들었다고도 해명했다. 가정폭력 사건으로 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피해자가 '김씨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씩 집에서 자고 갔다'고 진술해 사실혼 관계라고 판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범죄 피해자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검사를 하는데, 이 검사 결과에서 보복 위험성이 낮게 나와 경찰이 잘못된 판단을 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매년 데이트폭력은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형사 입건된 인원은 2020년 8982명에서 2022년 1만2841명으로 크게 늘었다. 112 신고 건수는 2020년 1만8945건에서 2021년 5만7297건, 2022년 7만518건, 2023년 5월 15일까지 2만7216건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박나은 기자 / 최예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