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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이젠 됐다’ 할 때까지 사죄하겠다”던 日 목사 뜻기려...일본 가서 조문한 한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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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 또 사죄하던 오야마 레이지 목사 16일 별세</br>소강석 목사 직접 조문

조선일보

오야마 레이지 목사(오른쪽)와 일한친선선교협력회 회원(목사, 장로)들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년 2월 27일 제암교회를 찾아 사죄하는 모습. /새에덴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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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아침 비행기로 고(故) 오야마 레이지 목사님의 장례식에 조문을 하였습니다.”

지난 5월 22일 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5월 22일은 월요일이었지요. 월요일은 교회에서는 휴일이기도 합니다. 일요일엔 예배를 드리고 월요일에 쉬지요. 소 목사님은 이날 아침 8시 40분 비행기로 도쿄로 날아가 동경성서그리스도교회를 찾아 조문하고 그날 저녁 8시 5분 비행기로 귀국했습니다. 다른 일정 없이 조문만을 위한 당일치기 일본행이었지요. 일주일에 하루 재충전하는 휴일에 소 목사님을 일본까지 달려가게 만든 오야마 레이지 목사님은 누구일까요.

일본 개신교의 과거사 회개 상징 인물

지난 16일 별세한 오야마 레이지(尾山令仁·96) 목사님은 한마디로 ‘일본 개신교의 과거사 회개’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2019년 2월 27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기 화성 제암교회에 일본인 목사들이 찾아가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사죄한 사진을 보신 독자님들이 있으실 겁니다. 이 사죄를 주도한 분인 오야마 목사님입니다. 그 때 오야마 목사님이 회장으로 있던 ‘일한친선선교협력회’ 일행을 초청한 교회가 새에덴교회였습니다. 당시 서울광장 연합기도회에도 참석한 오야마 목사님은 “제가 이번에 한국의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말씀드려야 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죄드리는 것 뿐”이라고 말해 기도회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1927년 도쿄에서 태어난 오야마 목사는 와세다 대학원과 도쿄신학숙을 졸업한 후 목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인학생회(KGK) 창립자이며 일본어 ‘현대역 성서’를 번역한 목회자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진짜 알고 싶다’ ‘사후에 대해 진짜를 알고 싶다’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등 100권이 넘는 저서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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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왼쪽 두번째) 새에덴교회 목사가 22일 동경 성서그리스도교회에 마련된 오야마 레이지 목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오른쪽은 상주인 오야마 세이지 목사. /새에덴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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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와 먼저 화해한 후 예물” 구절에 충격

일본에서 활동하는 하요한 선교사님에 따르면 오야마 목사님이 일본제국주의 피해를 입은 아시아 국가들에 사죄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6년 마태복음 말씀을 묵상하던 중 변화를 겪으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그 말씀은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마태복음 5장 23~24절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선배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 저지른 죄에 대해 사죄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으로 한국과 필리핀을 찾아 사죄했습니다. 한국은 국교가 재개되기 전부터 찾았다고 합니다.

제암교회 재건 운동 벌여 모금도

특히 일제가 교인들을 교회로 불러들여 학살한 화성 제암리교회를 1967년 첫 방문한 이래, 교회 재건을 위해 당시 1000만엔을 모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오야마 목사님은 2015년 광복 70주년, 2019년 3·1운동 100주년 등에 한국을 찾아 기도회에 참석해 사죄했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도 참석했습니다. 플래카드에 적은 그대로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별세할 때까지 사죄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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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을 앞둔 2019년 2월 27일 새에덴교회를 찾은 오야마 레이지 목사(오른쪽)와 소강석 목사가 악수하고 있다. /새에덴교회 제공


두 차례 초청 인연 소강석 목사 “조화만 보낼 순 없었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님과의 인연은 2015년 광복 70주년과 2019년 3·1운동 100주년 때 초청하면서 맺어졌다고 합니다. 오야마 목사님은 새에덴교회도 방문했고요. 그랬던 오야마 목사님의 부음을 듣게 되자 소 목사님은 “엄청난 부담감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조전(弔電)이나 조화를 보낼 수도 있지만 오야마 목사님의 정신과 가치를 이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에 당일치기 조문을 다녀오기로 했다는 것이지요. 마침 일본은 장례풍습이 우리와 달라서 25일엔 전야식, 26일 고별식까지 예정돼 있어서 휴무일인 월요일을 이용해 조문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아무도 ‘조문 가라’고 시키지도, 소 목사님이 조문을 가야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소 목사님은 ‘부담감’ 혹은 ‘의무감’을 느끼고 간 것이지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새에덴교회가 2007년부터 6·25전쟁 국내외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해마다 거르지 않고 이어온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라도 나서야 한다’는 의무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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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조문 온 소강석 목사(왼쪽)를 상주인 오야마 세이지 목사가 맞고 있다. /새에덴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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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마 장남 “젊은 세대가 유지 계승해야”

오야마 목사님의 장남도 목회자랍니다.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이지요.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은 한국에서 조문 온 소 목사님을 만나고 조금 놀란 듯 했다고 합니다. 소 목사님은 상주인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에게 “한국의 국민과 그리스도인들이 오야마 목사님의 정신과 가치,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가치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위로했답니다.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도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허락하신 그 마음과 일본과 한국의 화해와 사죄의 사역은 아직 도상(途上·진행 중)에 있다”며 “그렇지만 토대가 형성됐기에 그 귀한 유지(遺志)와 정신을 젊은 우리가 계승해서 더 발전, 전진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은 초등학생 시절 선친이 제암교회 재건 운동에 앞장선 것을 또렷히 기억한다고 합니다. 새에덴교회는 대를 이어 오야마 세이지 목사님도 초청해 제암교회 등을 방문할 계획을 세울 것이랍니다.

아시는대로 일본에서 개신교 교세는 미미합니다. 그래서 오야마 레이지 목사님 등의 사죄에 대해서도 ‘대세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일본 사회 소수의 외침’으로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하겠다고 다짐하고 실제 마지막 순간까지 사죄한 일본 목회자와 그 사죄의 진정성을 존중하며 촌각을 쪼개 현지 조문으로 성의를 보인 한국 목회자의 모습은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도 귀한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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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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