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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미술의 세계

매일 쉼없이 걸어가는 당신도 현대미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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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줄리안 오피 작가(앞줄 왼쪽)가 설치작품 러닝머신 위에서 걷고 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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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발광다이오드(LED) 영상 작품으로 유명한 팝아트 작가 줄리안 오피(67)가 이번엔 관람객을 본인 작품의 일부로 만들었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 F1963의 국제갤러리 부산점 옆 석천홀에는 마치 무대 배경 같은 대형 수평선 그림과 도시 풍경 그림이 각각 설치돼 있었다. 작품을 채울 관람객 자리를 비워둔 채.

평소 사진 찍기를 꺼리던 작가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오큘러스 메타퀘스트 고글을 머리에 쓰고 걸으면서 가상현실(VR) 작품 'OP.VR/01'(2022)을 시연했다.

설치작품 'Walking in Busan'(2023)에선 러닝머신에 올라 본인 대표 작품의 걷는 사람이 됐다. 이 퍼포먼스는 세계 최초로 선보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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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는 "사람들이 카메라로 인증샷을 찍으면서 작품을 보는 것이 대세가 된 시대는 예술가에게 도전이다. 관람객이 내 작품을 직접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8년 부산 F1963 개관에 맞춰 개인전을 가졌던 그가 5년 만에 부산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7월 2일까지 연다. 국제갤러리 부산이 개관한 이래 석천홀에서까지 펼친 전시는 처음이다. 일찌감치 LED 기술을 회화에 접목했던 그가 이번에는 VR 신기술을 새로 선보였다.

도심에서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작가는 코로나19로 1년 반가량 갇혀 지내는 동안 틱톡과 유튜브에서 2010년 유행하던 셔플댄스 영상을 발견하고 '이거다' 싶었단다. 간단하고 반복적이지만 초당 100비트의 빠른 댄스음악에 맞춰진 동작이 갤러리 전시장에 퍼지면서 흥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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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플 댄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알루미늄판 회화 'Dance 1 Step 2.'(2022)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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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댄스' 연작은 전문 댄서인 본인 딸과 친구 3명을 모델 삼아 무려 60개 동작을 모아 완성했다. 색깔을 일종의 언어처럼 쓰는 만큼 설원을 누비는 스키어들의 선명한 원색 의상을 차용해 댄서들에 적용했다.

동작 중 한 장면을 선택해 작가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대형 알루미늄판 회화로 펼쳤다. LED 동영상과 나란히 대리석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 회화도 걸렸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전형적인 재현 방식도 픽셀로 구성됐다는 데서 착안해 시간을 넘나드는 회화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오피는 "어릴 때 만화책 '틴틴의 모험'을 즐겨 보면서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됐다"며 "공항이나 붐비는 거리 등 다양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색과 기술을 사용해 나만의 '회화'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치밀하게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단순한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흔하디흔한 일상을 좀 더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선 둥그렇게 휜 핸드레일(계단 손잡이) 소재인 스테인리스 튜브나 식탁 의자에나 쓰일 법한 떡갈나무 등 새로운 일상 재료와 만나 색다른 입체 조각으로 구현된 작품들도 선보였다. '궁하면 통한다'는 정신은 예술가에게도 적용됐다. 2021년 국제갤러리 서울점 전시를 준비할 당시 코로나19로 오지 못하자 영국에서 VR 기술로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VR 신작 아이디어도 나왔다.

VR 체험 공간 안에서만 총 8개 전시장을 거쳐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오피의 작품 12점을 접하게 된다. 기존 작품과 똑같이 재현된 것도 있지만 바닥에 흩어진 비둘기 조각 'Pigeons'(2021)들이 방향을 틀며 모여들고, 압도적인 규모의 조각이 팔을 움직이는 등 현실에서 구현하기 힘든 가상 세계가 펼쳐진다. 오피는 "전시 초대장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어 이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이번 전시에 매우 만족한다"며 "앞으로도 어떤 신기술을 사용할지 모르니 다음 전시도 눈여겨봐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부산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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