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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중동 지각 변동… “시리아 도살자를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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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통령, 13년만에 시리아 방문키로… 정상회담 일정 전격 발표

조선일보

라이시 이란 대통령,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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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5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시리아를 방문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라고 이란 정부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이란 대통령의 시리아 방문은 2010년 9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대통령 이후 12년 8개월 만이다.

이란은 이슬람 소수 종파인 시아파 종주국이고, 시리아는 수니파가 다수지만 알아사드 정권은 범(汎)시아파다. 두 나라는 강력한 반미국가로 지금도 미국 주도의 각종 제재를 받고 있다. 이런 종교·정치적 배경으로 두 나라는 밀착했고,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도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알아사드 정권을 전폭 지지해 왔다. 다만 양국 모두 국제사회의 각종 제제를 받는 상황에서 공식적 협력 행보는 자제해 왔다. 그러나 이란이 양국 정상의 회담 일정을 전격 공개하며 “더이상 국제사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 대통령실은 “이번 방문은 (서방에 대한) 이란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를 축하하는 역사적 이벤트가 될 것”이라며 노골적 반미감정을 드러냈다.

최근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로 시작된 중동 정세 격변이 이란 대통령의 시리아 방문을 계기로 더욱 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선 13년째 지속 중인 내전을 통해 자국민 40만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알아사드의 국제 무대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제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 사우디와 반미 국가 이란의 관계 정상화에 따른 변화가 시리아의 고립 해소로 자연스레 연결되고 있다. 프랑스 매체 주간 리베라시옹 등은 “최근 중동 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시리아의 도살자(boucher)’를 되살렸다”고 평가했다.

이미 중동 국가 간 협의체인 아랍 연맹도 시리아를 연맹에 복귀시킬 채비를 하고 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지난달 19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방문해 알아사드 대통령을 만나고 그를 이달 19일 자국에서 열리는 아랍 연맹 정상회담에 정식 초청했다. 사우디 외무장관의 시리아 방문은 2011년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앞서 지난 19일 UAE를 방문,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UAE 대통령도 만났다. 중동 국가들의 관계를 엄격하게 구분하던 수니파와 시아파, 친미와 반미의 틀이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다.

시리아에서만 9000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지난 2월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도 정세 격변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아랍 국가들은 이번 지진을 계기로 시리아와 관계 복원에 나서며 시리아의 아랍 연맹 복귀도 추진해왔다. 지난달 사우디, 오만 등 아랍 9국 대표단이 사우디 제다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고, 이달 초에도 이집트·이라크·사우디·시리아 외무장관들이 요르단에서 관련 문제로 회동하며 시리아 복귀 문제는 급물살을 탔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오는 19일 아랍 연맹 정상회담에서 시리아의 아랍 연맹 복귀가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주도해온 미국과 서방은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고심하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이 시급한 상황에서, 중동의 맹주 사우디가 독자 노선 구축에 나서자 미국과 서방의 중동에 대한 영향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이 강경·극우화하면서 미국이 공을 들여온 중동 내 반(反)이란 전선마저 와해될 위기에 몰렸다. 중동의 데탕트(긴장 완화) 무드를 거슬러 시리아와 이란 등 이른바 ‘불량 국가’에 대한 제재 고삐를 섣불리 조이고 나설 수 없는 처지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반정부·민주화 시위를 알아사드 대통령이 무차별 무력 진압하면서 발생했다. 알아사드 정권은 아버지 하페지 알아사드 전 대통령 때부터 50년간 독재를 해온 세습 정권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013년엔 반군 장악 지역인 구타에서 사린 가스 공격을 감행, 최소 1400명의 민간인을 숨지게 했다. 이에 아랍권과 서방국가들은 시리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외교적 제재를 가해왔다. 그러나 이란이 알아사드 정권을 계속 지원하고, 2015년부터는 러시아도 시리아에 자국군을 파병해 알아사드 편에 서면서 내전은 사실상 정부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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