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5월2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펼쳐지는 고궁 뮤지컬 <세종 1446> 리허설 장면. 에이치제이(HJ)컬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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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뿌리던 비는 멎었지만 거센 바람은 잦아들 줄 몰랐다. 휘이잉 바람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로 퍼졌고, 화려한 어의 자락은 깃발처럼 휘날렸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굴하지 않고 노래했다. 바람 소리를 뚫고 퍼져나간 왕의 음성은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고자 하는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듯 들렸다. 거대한 경복궁 근정전의 위엄이 왕의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었다.
29일 밤 경복궁에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가야 만날 법한 광경이 펼쳐졌다. 궁궐의 중심 건물 근정전 앞에 놓인 용상에는 세종이 앉아 있었고, 그 아래에는 수십명의 신하와 환관, 궁녀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는 뮤지컬 <세종 1446>의 한 장면. 29일부터 5월7일까지 서울 5개 궁에서 열리는 궁중문화축전 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무대다.
29일~5월2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펼쳐지는 고궁 뮤지컬 <세종 1446> 리허설 장면. 에이치제이(HJ)컬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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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446>은 2018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이다. 세종이 충녕대군에서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한글 창제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으며 겪은 고난과 시련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뤘다. 이를 이번 궁중문화축전에 맞춰 고궁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전 궁중문화축전 때 창경궁에서 영조와 정조, 사도세자 얘기를 담은 <복사꽃, 생각하니 슬프다>(2021), 소현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현>(2022)을 궁중 뮤지컬로 공연한 적은 있지만, 조선 최대 궁궐 경복궁에서 고궁 뮤지컬을 펼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부터 궁중문화축전을 열어온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본격적으로 펼치는 올봄 축제를 위해 <세종 1446> 제작사 에이치제이(HJ)컬쳐와 첫 경복궁 고궁 뮤지컬을 준비해왔다. 근정전 앞 광활한 무대를 꽉 채우기 위해 애초 37명이던 출연진을 두배가 넘는 80명으로 늘렸다. 또 인터미션 포함해 165분이던 공연시간을 인터미션 없는 105분으로 줄였다. 세종 역은 정상윤·박유덕, 아버지 태종 역은 남경주·김주호, 아내 소헌왕후 역은 박소연·김지유가 맡았다. 29일~5월2일 네차례만 공연하는데, 기대를 반영하듯 예매 시작과 동시에 2800석 전석이 매진됐다.
29일~5월2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펼쳐지는 고궁 뮤지컬 <세종 1446> 리허설 장면. 에이치제이(HJ)컬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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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재 뮤지컬인 만큼 전통의 요소도 돋보였다. 화려한 전통의상과 궁중무술은 물론, 소리꾼 이봉근이 도창으로 출연해 판소리 하듯 해설하는 대목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도창이 저잣거리 민초들과 ‘달이 해를 먹었다’를 부르는 장면은 마당놀이 한판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근정전 앞 너른 마당 ‘조정’을 무대로 활용한 대목이 압권이다. 승하한 태종이 흰 수의를 입고 조정을 가로질러 궁을 걸어 나가고 그 뒤를 수십명의 신하와 궁녀들이 따르는 장면은 고궁 뮤지컬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백성의 소리가 열린다”는 노랫말과 “백성이라 불리는 들꽃들을 위해 글을 만든다”는 대사는 왕위의 중압감에 따른 번뇌, 시력을 잃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한글 창제 의지를 굽히지 않은 세종의 깊은 뜻을 전한다. 마지막에 승하한 세종이 하늘나라로 먼저 간 절친 장영실과 해후하는 장면은 긴 울림을 남긴다.
공연이 끝나고도 관객들은 쉬이 떠나지 못했다. 조명이 감싼 근정전 야경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온 40대 김수미씨는 “뮤지컬을 가끔 보는데 경복궁에서 한다고 해서 꼭 오고 싶었다”며 “추운 날씨도 잊을 만큼 멋지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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