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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이슈 미술의 세계

내 꿈은 프로메테우스! 불 대신 ‘미술의 재미’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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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라이터] [3] 글쓰는 미술사학자 양정무

조선일보

양정무 교수는 “글쓰기란 내게 도전이다. 쓰기 시작할 땐 길이 다 보인다 생각했는데 다 쓰고 나서 돌아보면 내가 엉뚱한 곳에 와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지적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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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곰브리치’. 미술사학자 양정무(56) 한예종 교수의 별명이다. 런던대 미술사 교수였던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가 1950년 파이돈 출판사에서 낸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는 미술사학도라면 꼭 읽어야 하는 입문서로 꼽힌다.

양정무 교수가 2016년부터 내고 있는 ‘난처한 미술 이야기’(사회평론) 시리즈는 그간 출간한 일곱 권 모두 합쳐 30만부가량 팔렸다. 양 교수의 전공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생 때 아르놀트 하우저가 쓴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역사학자가 된다면 통사(通史)를 한번 써야 하지 않겠냐’ 하는 ‘학문적 야심’을 일찍부터 가졌어요.”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와 만난 양 교수는 “런던에 있을 때 수시로 영국 박물관의 이집트 미술 전시실과 메소포타미아실을 찾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통사를 쓰려고 고딕미술, 추상미술 관련 수업도 청강했다”고 말했다.

‘난처한’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의 줄임말. 원시 미술에서 시작해 16세기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까지 다다른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신석기 토기, 라스코 동굴벽화 등을 다룬 제1권. 시리즈 도서는 보통 1권이 가장 인기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상주의도 아니고 대중이 일반적으로 가장 지루해하는 시기에 대한 책이 7만부 팔렸다는 건 이례적이다. 양 교수는 “작품 앞에서 솔직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학자의 눈높이에서 상식적인 내용이라도 “이건 다 아는 거죠?” 넘어가지 않고 ‘내가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뭐가 궁금했더라?’ 되짚으며 대중 눈높이를 맞췄다는 이야기다. “그리스 신화를 다룬 작품 앞에 서면 ‘인물들이 왜 벌거벗었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각해요. 신은 신성한 존재라 옷으로 몸을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인물은 제우스일까?’부터 시작해요. 기존 미술사 책이 그런 방식으로 기술됐기 때문이죠.”

‘서양미술사학계의 유홍준’은 양 교수에게 붙은 또 다른 별명.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못지않은 이야기꾼이라는 뜻이다. 양 교수는 런던 유학 시절부터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IMF 한파가 닥쳤을 때 주재원과 유학생 대상으로 6주 과정 미술사 공부 모임을 꾸려 2년가량의 ‘보릿고개’를 넘었다고 했다. “4주는 미술관을 돌며 현장 강의를 하고, 나머지 2주는 슬라이드 강의를 했죠. 생계를 위해서였지만 그래도 즐거웠어요.”

‘난처한…’도 강의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렉처 북’이다. “원래는 2014년 사회평론 편집자들을 위한 사내 강의로 시작했어요. 나중에 사회평론 측에서 ‘책으로 만드는 게 어떻겠냐’ 제안해서 책이 나오게 됐어요.”

‘난처한…’ 외에도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2006) ‘상인과 미술’(2011) ‘그림값의 비밀’(2013) ‘벌거벗은 미술관’(2021) 등을 냈다. 미술 작품의 상업성은 그가 오랫동안 가져온 관심사. 박사 학위 논문도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 작품에 사용된 안료의 상업적 특성을 주제로 썼다. “미술은 사회의 산물이잖아요. 저는 상업적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르네상스 시대 후원자는 작품 생산 과정에 많이 개입했어요. 그를 추적하는 게 의미 있다 생각했죠.

‘난처한…’ 시리즈는 총 열 권으로 기획했다. 2025년까지 8권 ‘바로크 미술’, 9권 ‘귀족과 미술’, 10권 ‘시민과 미술’을 쓸 계획이다. “전업 작가도 아닌데 왜 꾸준히 쓰는가” 물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나만 알고 있기 너무 아깝지 않아요? 미술은 본디 특정 엘리트 집단의 언어라서 그 세계로 들어가려면 알파벳 같은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저는 ‘미술의 프로메테우스’가 되고 싶어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다면, 저는 미술이 불처럼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한 세계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양정무의 ‘내 영감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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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도마뱀에 손가락 물린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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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인 작품이 항상 가장 재미있다.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도마뱀에 손가락 물린 소년’<작은 사진>을 공부하고 있다. 젊음의 위험성과 인생의 허무(vanitas)를 함께 보여주는 그림인데, 6월 국립중앙박물관서 열리는 ‘영국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에 온다.

존경하는 화가

현대사의 굴곡을 뚫고 그림을 그린 20세기 한국 작가들을 존경한다. 한 예로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고(故) 김창열 화백은 1929년생, 평안남도 맹산이 고향이다. 우리 아버지와 동향이고 연배도 비슷한데 생전에 “6·25가 끝나고 나니 중학교 동창 3분의 2가 죽고 없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삶 자체가 전쟁이었던 그런 분이 그린 물방울은 ‘다른 물방울’로 보일 수밖에 없다.

독자들과 함께 가고픈 미술관

런던에서 힘들 때 가장 위안이 된 공간이었던 월레스 컬렉션. 프라고나르의 ‘그네’를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로코코 미술품 컬렉션에서 세계 최고로 꼽힌다. 컬렉션 수준도 경이로운데 18~19세기 작품들이 동시대 저택을 개조한 공간, 그 시대 가구 등 인테리어와 같은 맥락에서 어우러져 있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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