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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세월호 생존학생 첫 에세이···“아파도 살아내고, 이겨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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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책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쓴 세월호 참사 당일 생존한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한명인 유가영씨.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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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담아온 식판이 기울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기 힘들 정도로 배가 기울어진 게 느껴졌다. 머지않아 배 안의 모든 불이 꺼졌고 객실 유리창을 통해 기울어진 배가 수면과 점점 가까워지는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가만히 계세요’라는 안내 방송에 할 수 있었던 건 친구들과 서로를 의지하며 불안한 시간을 버티는 것뿐이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생존한 단원고 2학년 중 한명인 유가영씨(26)가 떠올린 그 날이다. 유씨는 친구와 함께 헬기를 타고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했지만 오랜 시간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었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앞둔 지난달 30일 만난 그는 지금도 매일 우울증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불안이 종종 파도처럼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이 모두 고통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라고 유씨는 말했다.

그는 최근 에세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를 출간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 평범한 삶을 살아내려 한 유씨의 치열한 일상이 책 속에 담겨있다. 세월호 생존자가 직접 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아이들이 9년 지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더는 불쌍한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이 돼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있다고요.”

다시 세월호 얘기를 꺼낸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걱정돼 출간을 주저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씨는 세월호 참사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을 보며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펜을 잡았다. PTSD 등을 겪는 생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PTSD를 겪으면서 전처럼 공부나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불안과 능력 저하, 우울증과 불면증 등으로 오랜 시간 상담을 받아야 했다.

마음의 병은 노력만으로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대학교 2학년 무렵 가족들과 상의해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다.

유씨는 이런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퇴원 후 마음 맞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비영리단체 ‘운디드 힐러’(외상후 성장을 겪어 치유자가 된 사람을 일컫는 용어)를 만들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함께 치료해 나가자는 취지로 아이들의 트라우마 관련 인형극 등을 기획했다.

그는 “참사 후 빠르게 괜찮아진 친구도 있지만 아직도 바다를 보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다”며 “PTSD 증상과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함께 이겨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한 뒤 유씨는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세월호 때와 달라진 게 없는 대처 방법과 생존자와 피해자만 발버둥 치는 악순환이 답답했어요. 세월호 때처럼 정치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이태원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는 이상한 시선과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모이기 힘든 상황도 안타까웠고요.”

그는 “시간이 지났으니 (참사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방관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운디드 힐러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경험담을 위주로 한 치유의 글을 이달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재난 관련 보드게임도 기획 중이다.

유씨의 최근 고민은 여느 청년들과 다르지 않다. 당장은 월세를 내기위해 물류센터부터 사무실 알바까지 바쁘게 살고 있다. NGO 활동가를 목표로 취업 준비도 하고 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현장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을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소설도 계획하고 있다. 유씨는 “느리지만 앞을 향해 한발씩 내디디고 있다”며 “앞으로는 세월호 참사와 생존자들의 삶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 내고 싶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에세이 <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는 세월호 생존학생 유가영씨가 참사 후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으면서도 평범한 삶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온 일상의 기록이 담겨있다. 출판사 다른 제공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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