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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자사주의 역설 "매입한 만큼 없애질 않는데 주가 오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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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기자]

기업의 자사주 매입 소식은 주가를 끌어올리는 호재다. 사들인 자사주만큼 유통되는 주식이 줄어들어 주식 가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다. 문제는 그런 효과가 자사주를 소각했을 때에만 나타난다는 거다. 자사주를 매입해 놓고 정작 없애지 않으면 주주가치는 제고되지 않는다. 행동주의펀드가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목청을 드높인 올해,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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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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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글로벌 증시는 침체와 변동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세계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그에 따른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주식시장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증시도 마찬가지다. 거센 외풍에 내부 문제까지 악재가 숱하다.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지난해 3월 이후 12개월 연속 적자행진을 기록 중이다.

전망도 암울하다. 무엇보다 수출 효자품목인 반도체의 부진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올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300만 달러로 전년 동기(103억6800만 달러) 대비 42.4% 감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플레이션은 수그러들지 않는데, 미 시중은행이 연쇄 파산하면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몰렸다.

당연히 증시는 부진의 늪에 빠졌다. 1월 중순 2400포인대까지 상승했던 코스피지수는 그 이후 9일(2419.09포인트)까지 31거래일 동안 2400포인트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14일에는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의 영향으로 2.56%(2410.60포인트→2348.97포인트) 하락하며 검은 화요일까지 맞았다. 국내 주요 기업이 최근 주가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올해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행동주의펀드가 주주 공개서한을 보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주가를 띄우겠다는 거다.

실제로 자사주 매입은 배당 확대와 함께 대표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법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사들이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가 상승의 발판이 마련된다.[※참고: 다만,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인 다음 소각하지 않으면 주식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되레 이는 기업이 자사주를 맘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다음 소각해야 주주가치가 제고된다는 의견이 많다. 이 논쟁은 후술했다.]

그럼 어떤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 상승을 노리고 있을까. 행동주의펀드로부터 주주가치를 높이라는 압박을 받은 신한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이 각각 1500억원,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지난 2월엔 KT가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KT는 신탁계약 방식을 통해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중 1000억원 규모를 소각할 예정이다. SK네트웍스도 지난 13일 이사회를 열고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의결했다.

기업정보 공시채널 카인드(KIND)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자사주 취득을 신고한 기업은 69곳이었다. 이중 29곳이 직접 취득 방식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 나머지 40곳은 신탁계약을 통해 자사주를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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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 신탁 취득은 기업과 계약을 맺은 은행이나 증권사가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이다. 이사회 의결·신고서 제출 등을 거쳐야 하는 직접 취득보다 절차가 간편하다. 신고 후 3개월 이내에 주식을 모두 사들여야 하는 직접 취득과 달리 계약 기간에 따라 금융회사가 자유롭게 사들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자율성이 높지만 자사주 직접 취득보다는 주가 상승효과가 낮다.

■ 신통찮은 자사주 매입 효과 = 그럼 자사주 매입은 실제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올 초부터 지난 16일까지 자사주를 직접 취득한 29개 기업(중복 포함)의 주가 흐름을 분석했다. 미 SVB 파산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3월 8일 이후 자사주 매입 신고를 한 기업 3개를 제외한 26개의 주가를 살폈다.

자사주 매입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자사주 직접 매입 소식을 알린 날 26개 기업의 주가는 평균 2.12%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다만, 효과는 천차만별이었다. 5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소식을 알린 미래에셋벤처투자의 주가는 9.68%의 상승세를 보였지만, 1500억원의 자사주 매입에 나선 신한금융그룹 주가는 3.73% 하락했다. 26개 기업 중 자사주 매입 신고일 주가가 떨어진 기업은 7개(26.9%)를 기록했다. 4곳 중 1곳은 자사주 직접 취득 소식에도 주가가 하락한 셈이다.

자사주 매입 효과가 오래가지도 않았다. 자사주 매입 공시 다음날 주가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26곳 중 16곳의 주가가 하락세를 기록했고, 자사주 매입 당일 대비 평균 0.27% 떨어졌다. 하루 만에 자사주 매입 효과가 사라진 셈인데, 3거래일 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6곳의 주가는 3거래일 뒤 0.67%, 4거래일 뒤 0.90% 등으로 부진했다.

자사주 매입 소식을 알린 후 10거래일 뒤 평균 주가(19개 기업)는 1.89% 상승하는 데 그쳤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이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 매입과 소각의 간극 = 자사주 매입 효과는 왜 크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만 할 뿐 사들인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우철 블랙펄자산운용 대표는 "자사주 매입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선 자사주를 소각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전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애플의 주가가 계속해서 상승한 덴 지난 10년간 56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 영향도 한몫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각하지 않은 자사주는 잠재적인 매물로 인식돼 주가 상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자사주를 사기만 하고 소각하지 않는 국내 상장사의 꼼수를 투자자들도 알아차렸기 때문에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올해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 중 소각을 진행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앞서 분석한 29개 기업 중 자사주 취득 목적에 '주식 소각'을 명기한 곳은 4개에 불과했다. 한곳은 임원의 성과 보상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21개의 기업은 취득 목적을 '주가 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라고 알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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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의 관행상 자사주 취득으로 인한 주주환원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는 상당 부분이 소각되지 않거나 기업의 재량에 따라 처분되고 있다. 매입한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자사주 마법은 흔하게 나타난다."

김우진 서울대(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기업이 매입한 자사주를 시가총액에서 제외해 주식이 소각된 효과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는 시총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자사주를 시간이 흐른 후에 시장에서 처분하는 것은 투자자에겐 신주가 발행된 것과 같다"며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제가 있어야 주주가치 제고라는 자사주 매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앞다퉈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며 자사주 매입에 나서고 있지만 주가가 제자리인 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의 자사주 매입 소식의 씁쓸한 이면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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