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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1964년 ‘親日’ 비판 대응한 박정희...2023년 尹과 달랐던 점은 [대통령의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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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행보를 이어가며 논란도 점차 심화되는 중입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보이는 반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심상치 않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의 발언까지 인용하며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재차 드러냈습니다. 역대 최장시간(23분)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려 나선 것을 보면 일정 수준의 지지율 하락은 감수하겠다고 각오했던 점이 잘 드러납니다.

대통령의 연설 이번 회차에서는 현재 윤 대통령과 비슷한 입장에 처했던 전임 대통령의 연설문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한국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인 ‘친일(親日)’ 꼬리표를 감수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논리가 정확히 일치하구요.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 선거를 승리한 직후부터 이같은 과감한(?) 행보에 나선 점도 닮아 있습니다.

다만 연설문 전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다른 점이 인상적입니다.

매일경제

박정희 대통령 일본경제인단접견악수1(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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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시민 여러분께 불안끼쳐 송구…시위청년들 심정도 이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64년 3월26일에 ‘한·일회담에 관한 특별담화문’을 발표합니다. 이틀전인 3월24일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벌어진 데 따른 입장을 공개한 것인데요. 윤 대통령이 이번 국무회의 발언에서도 당시의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인용할만큼 연관성이 높은 연설문입니다.

하지만 반대세력에 대한 접근법은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이 정반대 방식을 취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윤 대통령의 경우 23분 연설을 문재인 정부 탓에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전임 정부’를 직접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가) 수렁에 빠진 한일관계를 그대로 방치했습니다”라며 “그 여파로 양국 국민과 재일 동포들이 피해를 입고 양국의 경제와 안보는 깊은 반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고 지적했죠.

반면 박 전 대통령은 담화문의 첫문장부터 “한일회담문제로 일부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를 가짐으로써, 시민 여러분에게 불안한 심려를 끼치게 되어 나는 위정자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며 “민주주의 국가인 이 나라에서 더욱이나 국가장래를 위한 우국충정의 일념에 불타는 젊은 학생들이 한일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위에 나선 그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라며 사과를 반복합니다.

독자분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박 전 대통령의 담화문은 자신의 뜻을 꺾겠다고 발표하기 위해 작성한 글이 아닙니다. 위와 같은 사과의 문장 이후에는 자신의 신념을 밝히고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내용이 장문으로 이어지죠.

다만 담화문의 말미에 이르러서도 “학생 여러분의 사심없는 애국시위는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고 10여년 계류 중에 있었던 한, 일회담 진전에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이제 학생 여러분은 부디 각자 학원에 돌아가 다시 학업에 충실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해 마지 않습니다”라며 국내 반대여론을 무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죠. 박 전 대통령은 이어서 “나는 오늘 외무부와 관계당국에, 모든 학교의 학생대표들에 대하여 그들의 량식을 믿고 한, 일회담의 진행상황을 그대로 소상히 설명해 줄 것을 지시하였음을 참고로 밝혀두는 바입니다”라며 담화문을 마무리합니다.

박 전 대통령의 담화문은 주로 시위에 나섰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았고, 윤 대통령의 경우 야당을 대상으로 설정했던 점이 이같은 차이를 끌어낸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텐데요. 반대로 박 전 대통령도 충분히 야당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고, 윤 대통령도 국민의 반대여론을 대상으로 설정할 수 있었을테니 어느 정도 각자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 봅니다. 어떤 설득방식이 더 옳고 효과적일지는 굉장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한일협정을 추진하면서 이렇듯 국내 반대세력에 대한 배려에 신경썼었다는 점은 많은 이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은?’,‘이명박 대통령이 기억하는 현대건설은?’…<대통령의 연설>은 연설문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머릿속을 엿보는 연재기획입니다.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남아있는 약 7600개 연설문을 분석합니다. 지금 문재용 기자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발빠른 정치뉴스와 깊이있는 연재기사를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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