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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이슈 드론으로 바라보는 세상

드론이 전해준 쪽지 '따라와요'…러 총격서 우크라 부부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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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해 6월 이지움 들판에서 공격 받은 우크라 부부의 실제 영상. 사진 CNN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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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들판을 달리던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포화에 휩싸인다. 비무장 상태인 부부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으면서다.

21일(현지시간) CNN 방송은 지난해 6월 동부 격전지 하르키우의 소도시 이지움으로 부모님을 구하러 갔다가 러시아군의 총격을 받은 한 부부의 사연을 보도했다.

당시 이지움에서는 러시아의 총공세 속에 피비린내 나는 참상이 이어지면서 주민 4만6000명 중에서 일부가 탈출하지 못한 채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고립을 겪어야 했다.

남편의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부부는 들판을 가로지르다 길을 잘못 들었는데, 이것이 곧장 러시아군의 발포로 이어지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포화와 파편, 유혈이 뒤엉킨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뒤바뀌었다.

당시 상황은 실시간으로 현장을 정찰하던 우크라군의 드론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을 보면 차에서 빠져나온 부부는 간신히 승용차 뒤로 몸을 숨기는 모습이다. 이들은 차를 버리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30m 거리에 진을 친 러시아군의 추가 발포가 이어지면서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파편에 맞은 남편이 흙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모습, 부인이 수건으로 급하게 지혈을 하려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우크라이나 군은 정찰 드론으로 이를 지켜보면서도 전면적 교전으로 이어질까봐 즉각 개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크라 군은 대신 드론을 회수해 ‘따라오세요’(follow me)라고 적힌 쪽지를 매단 뒤 다시 부부 쪽으로 보냈다. 이를 목격한 부인은 러시아가 보낸 미끼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남편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드론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상에서는 한때 황금빛 들판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메마른 평지를 젊은 여성이 홀로 가로질러 걸어오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기면서 전쟁의 현실은 공포 영화의 극적인 한 장면보다도 훨씬 더 참담하다는 뼈아픈 진실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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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주민이 드론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 사진 CNN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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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의 메시지를 따라 부인은 무사히 아군 진영으로 들어섰지만 다시 남편을 구하러 돌아가는 게 금지되면서 이를 지켜봐야만 했다.

영상에서는 부인이 사라진 뒤 러시아 군인들이 남편에게 다가오더니 그대로 그를 들어올려 구덩이에 던져넣는 장면이 포착됐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남편은 구덩이에서 하룻밤을 버틴 뒤 죽을 힘을 다해 30∼40분을 걸어간 끝에 우크라군 진영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남편은 “걸음을 멈추면 고통이 밀려와 계속 걸어갔다”고 말했다.

남편은 당시 뇌, 가슴, 척추에 파편이 박혔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치료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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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이 총상을 입은 남편에게 접근하고 있는 모습. 사진 CNN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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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은 당시 현장에서 총을 쏜 러시아 군인이 25살 클림케르자예프이며, 우크라이나 형법에 따라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민간인 살해 미수 혐의로 21일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드론 영상과 케르자예프 통신 감청 등을 증거로 확보했다고 CNN은 전했다.

앞서 이지움에서는러시아 군이 물러나면서 민간인 대학살을 저지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 국제 사회의 공분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지움의 집단 매장지에서 시체 수백구를 발견한 것을 포함해 하르키우에서 수백건의 러시아 전범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한 우크라이나 영화감독은 당시 드론 영상을 토대로 다큐멘터리 ‘팔로 미’(follow me)를 제작해 유튜브로 공개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우리는 마치 TV에 나오는 드라마인 것처럼 이것을 보고 있다”면서 “이것은 러시아가 민간인을 죽이는 공포 영화”라고 말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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