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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취업과 일자리

조선소 이주노동자 유치만 하고 끝?…①직고용 ②차별 해소 ③교육·복지 원청이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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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장에서 말하는 '이주노동자 이탈' 해법은
한국일보

2월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에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창업자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생전 남긴 말이 조선소를 밝히고 있다. 울산=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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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 '유일'의 유인숙 대표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에게 일을 가르쳐 놓으면 조선업계를 떠나버린다"며 가슴을 쳤다. 조선업에 종사하겠다며 한국을 찾은 이들이 양식장, 양파밭, 배추작업장 등으로 떠나가는 일이 줄을 잇는 현실 탓이다. 유 대표는 "우리도 임금을 올릴 만큼 올려준 상황"이라면서 "이주노동자가 '갑(甲)'이고 우리가 '을(乙)'이 된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2. 베트남에서 온 20대 이주노동자 A씨 생각은 다르다. 조선소를 떠나면 '미등록 외국인' 신세가 되는데 이 때문에 여러 위기 상황을 감내하면서까지 조선소를 떠나는 이주노동자들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주어지는 것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건 그들을 향한 폭언과 차별. A씨는 "한국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한국인 직원들은 말을 못 알아듣는다며 화부터 낸다"면서 "마음이 상해 조선소를 떠나는 이들도 상당하다"고 했다.

국내 조선사들이 지난해부터 '수주 잭팟' 팡파르를 울리고 있지만 조선업 현장 곳곳에서는 인력이 모자란다며 아우성이다. 콕 집자면, 이주노동자들을 유치하고 이들을 계속 일하도록 하는 게 예전만큼 쉽지 않은 현실 탓이다. 조선사들은 ①같은 일을 해도 한국인보다 임금이 낮고 ②궂은일 마다하지 않으면서 ③조선업황이 나빠지면 쉽게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이유 등으로 이주노동자를 선호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한국에 온 뒤 다른 업종과 업무 강도를 비교하고 일 터 문화를 따져본 뒤 결국 조선소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외국인 선호 이유=조선소 기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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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한 조선소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 산재추방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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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2027년까지 조선·해양산업에 필요한 전문인력은 현재 인력 대비 약 4만3,000여 명으로, 당장 올해 연말까지는 1만4,000여 명이 확보돼야 일정 차질 없이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국내 인력이 조선업 현장에 가기를 꺼려하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 유입 및 정착이 업계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당장 일손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유 대표 말처럼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건설현장은 물론 논, 밭으로 가버리는 점도 배 만드는 시간표를 꼬이게 한다.

조선소 이주노동자들과 전문가들 얘기를 종합하면, 이주노동자들이 조선소를 잘 가려하지 않는 이유는 조선사가 이주노동자들을 찾는 이유와 정반대다. ①말은 안 통하는데 일이 서툴면 화부터 내고 ②조선소 내에서도 위험한 일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맡겨진다. ③여기에 일을 오래 해도 월급은 눈에 띄게 오르지 않아 동기부여조차 되지 않는다. 특정활동 근로자(E-7)로 입국해 조선소를 떠나면 미등록 외국인 신분이 돼 활동에 제약이 크다는 점을 알고도 이들이 조선소를 떠나는 이유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조선소 현장은 건설 현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안전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굉장히 거칠다"면서 "이주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과거에는 그나마 높은 임금 단가 때문에 버텼지만 지금은 임금 수준이 매력적 요인이 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사람들도 비슷한 요인으로 조선소를 떠나는데 외국인들이 겪는 문화나 감정 같은 부분은 고려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떠나면 난처한 건 조선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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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 내 작업현장. 영암=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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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현장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원청 역할론'을 주장한다. 거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협력업체 소속이지만 회사 유지에 급급한 협력업체들이 이주노동자 이탈 요인을 막기 위한 투자를 감행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 흑자 전환 기로에 들어선 상황이라 처우 수준을 확 끌어올리긴 어렵더라도 ①일부 직고용 ②차별 해소 ③교육·복지 등 전체적 관리에 원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울산에서 만난 조선업계 종사자는 "이주노동자들이 소속은 협력업체지만 정작 이들이 현장을 떠나면 곤란해지는 건 원청들"이라며 "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사들의 수익 구조가 개선되고 있는 만큼 이주노동자 이탈 방지를 위한 시스템을 꼼꼼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선사들이 이주노동자를 유치한 뒤 관리에는 소홀할 경우 조선업계 전반의 성장 동력이 꺾이고 지역 내 사회문제 등으로 기업 이미지도 손상될 거라는 얘기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나 컨테이너선 등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2027년까지의 일감을 확보해 놓은 상태로 저가 수주 물량도 거의 소화한 터라 올해부터는 본격 실적 개선이 이뤄질 거라는 기대가 높다. 지금 추세라면 2030년 이후까지도 일감 걱정은 없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인데 인력 수급에 따른 리스크 등을 줄이겠다며 업계가 추진 중인 '스마트 조선소' 구축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이주노동자들의 이탈 요인을 없애는 게 필수라는 지적이다.

원청, 부랴부랴 복지 확충…직고용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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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내 조선소 협력업체 직원들이 작업장에 복귀하고 있다. 영암=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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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도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부터 외국인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올해 이주노동자를 위한 위한 '글로벌 간편식' 및 '글로벌 메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도 1,400명 규모에서 2,500명 규모로 늘리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 삼성중공업도 경남 거제시 내 기숙사와 통역, 한국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조선사들이 과거 인사 방식에서 탈피하는 등 조금 더 세심하고 명확한 매뉴얼 구축을 주문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조선업 진출을 도와 온 신덕상 서정대 국제교류처장은 "이주노동자 직고용 등을 통해 리더를 키우고 업무에 필요한 언어 교육 등에 대한 매뉴얼 구축 등 경영진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실무와 소통 역량을 갖춘 이들을 직접 뽑아 이주노동자 관리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조직 내에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영암·울산=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울산=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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