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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리더십 부재의 시대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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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사진과 흉상이 미국 아칸소주 리틀록에 있는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아칸소=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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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는 정치적 혼란과 위기로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아픔을 겪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극단적 상황은 국민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고 국격과 국익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가 핵심 원인임을 보여준다.

미국 정치학자 그린스타인(Fred I. Greenstein)은 저서 ‘The Qualities of Effective Presidents’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갖춰야 할 여섯 가지 리더십 자질을 제시했다. 첫째는 공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효과적인 지도자는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신뢰를 구축한다. 둘째, '조직 능력'으로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셋째는 정치력이다. 정파적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이끌어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넷째, 정책 비전 제시 능력이며, 다섯째는 인지 능력으로 복잡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감성 지능'은 위기 상황에서의 감정적 안정성과 국민과의 공감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핵심 자질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 소통 부재는 가장 두드러진 문제다.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의사소통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정책의 정당성과 신뢰를 약화시켰다. 조직 능력의 측면에서도 진영논리에 매몰된 인사 행태로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지 못했다. 협력과 합의가 결여된 정책 결정 과정은 불투명성을 키웠고,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정치력의 부재 또한 심각한 문제다. 지도자들은 정당 내·외의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는 국민 간의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지도자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며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경향이 강해졌다. 즉흥적이고 일관성 없는 정책 발표는 경제적 불확실성을 초래하며, 국민의 미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인지 능력에서도 한계를 드러냈다. 전문가 의견을 배제하거나 이념에 치우친 의사결정으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빈번하다. 감성 지능 역시 부족하다. 지도자들이 비판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국민의 고통과 분노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은 불만을 키우고 국정의 불안을 심화시킨다.

그린스타인은 이러한 리더십의 모범으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지목했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뉴딜 정책이라는 장기 비전을 통해 미국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리더십은 소통, 협력, 비전 제시, 위기관리,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공고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경제 성장은 정치에 달려 있으며, 그 중심에 리더십이 존재한다. 국민과 소통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일관된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등장해야 한다. 위기의 시대에 진정한 리더십만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국을 세계 일류 국가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격동의 시대, 한국의 미래는 이러한 지도자의 등장에 달려 있다.
한국일보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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