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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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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오페라발레 ‘원조 지젤’ 빛났다…첫 흑인 에뚜알에 기립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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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내한한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이 ‘원조 지젤’의 저력을 뽐냈다. 주인공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연기는 물 흐르듯 했다. 특히 주인공 지젤 역을 맡은 POB 간판스타 도로테 질베르는 음악과 하나 된 듯 자연스럽고도 유려한 연기를 펼치며 관객에 감동을 선사했다. 11일 오후 2시 공연을 감상한 관객들은 POB 354년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에뚜알(POB 최고 등급 무용수)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행운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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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파리오페라발레(POB)가 발레 '지젤'을 공연 중이다. 사진은 주인공 지젤 역을 맡은 POB의 에뚜알(수석무용수) 도로테 질베르.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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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오페라발레단은 이날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이번 내한의 공연 일정을 모두 마쳤다. 2시 공연에서 에뚜알 도로테 질베르가 지젤, 23살의 신예로 지난해 말 쉬제(군무와 독무를 겸하는 무용수)로 승급한 기욤 디옵이 알브레히트 역을 맡아 호연했다.

질베르는 2007년 24살의 나이로 에뚜알이 된 이후 16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킨 POB의 간판스타다. 오랜 시간 주연을 맡은 그의 노련함은 시골 처녀 지젤 역할에 그대로 녹아들었다. 연인 알브레히트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젤이 정신을 잃는 '매드씬'은 1막의 하이라이트. 질베르는 눈동자 가득 눈물이 고인 채 손을 떨며 배신당한 여인을 연기해냈다.

낭만발레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2막에서는 질베르의 안정적인 발란스(한쪽 발끝으로 서서 멈추는 자세)와 귀신이 허공에서 움직이듯 가볍고 평온한 부레부레(두 발끝으로 선 상태에서 잰걸음으로 이동)가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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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지젤' 2막에서 윌리(처녀귀신)들의 세계에 들어간 알브레히트(기욤 디옵)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춤추는 모습. 기욤 디옵은 32회 앙트르샤시스(제자리에서 공중으로 뛰어 올라 두 다리를 앞뒤로 빠르게 교차하는 동작)을 흐트러짐 없이 해내며 객석의 환호를 받았다.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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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디옵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알브레히트를 연기했지만 2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32회 앙트르샤시스(제자리에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두 다리를 앞뒤로 빠르게 교차하는 동작) 등 고난도 기술을 유려하게 선보였다. 앙트르샤시스 20회를 넘기고서도 흐트러짐 없이 도약하는 젊은 무용수의 기예에 객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욤 디옵은 뛰어난 표현력과 신체 조건으로 일찍부터 '차기 에뚜알'로 불렸다. 입단 3년 차인 2021년부터 전통적으로 에뚜알에게 주어지던 주연 역할을 배정받았다. 군무 리더인 코리페에서 쉬제로 승급한 지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에는 '백조의 호수'에서 남자 주인공 지그프리드 왕자역을 맡으며 프랑스 발레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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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발레 '지젤' 공연에서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를 연기 중인 기욤 디옵(왼쪽)과 주인공 지젤을 연기 중인 도로테 질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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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한 공연은 디옵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됐다. 11일 공연 직후 호세 마르티네즈 POB 예술감독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에뚜알 지명을 받았다. POB 무용수들은 까드리유(군무)·코리페(군무 리더)·쉬제(군무와 독무를 겸하는 무용수)·프리미에당쇠르(제1무용수)·에뚜알(수석)의 5개 계급으로 구분된다. 디옵은 쉬제에서 프리미에당쇠르를 건너뛰고 두 단계를 승급해 입단 5년 차인 23살에 에뚜알이 됐다. POB에서 프리미에당쇠르를 건너뛰고 에뚜알이 된 파격 승급 사례로는 1985년 로랑 일레어, 1986년 마누엘 르그리, 2004년 매튜 가니오가 있었다. 흑인 무용수가 에뚜알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르티네즈 감독이 디옵을 새 에뚜알로 지명하는 순간 객석에선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디옵은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관객들의 함성은 커튼이 내려진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날 공연에서는 질베르와 디옵, 두 주연 무용수뿐 아니라 50여명의 군무진 모두가 윌리(처녀귀신)의 사후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내며 세계 최고(最高) 발레단의 기량을 뽐냈다. 지젤이 신분을 숨긴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는 1막에서 선보이는 활기찬 분위기의 춤은 지젤의 죽음 이후 무덤가 옆에서 펼쳐지는 몽환적인 2막과 대조를 이루며 관객들을 빨아들였다. 사랑스럽고 순진무구한 시골처녀에서 귀신으로 변한 지젤과 유령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윌리들, 파리 가르니에 극장에서 옮겨놓은 섬세한 무대 장치와 의상이 한데 어우러지며 '종합 예술'로서의 발레의 진면목을 보여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두 주역은 내한 공연 하루 전날인 7일 기자간담회에서 기대감과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디옵은 "알브레히트의 감정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장면이 많고 1막과 2막의 분위기 차이가 커 큰 도전이자 엄청난 기회"라고 했다. 질베르는 "사랑에 빠져 배신 당하거나 실연의 슬픔에 빠지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무용수 재량에 따라 지젤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에 늘 기대되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도전을 문제 없이 넘어선 모습들이었다.

발레 '지젤'은 시골 처녀 지젤과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의 계급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세계를 그려 낭만발레로 분류된다. 요정이나 귀신이 주인공을 맡는 점도 낭만발레의 특징이다. 낭만발레 대표작인 '지젤'의 배경이 처녀 귀신(윌리)들이 사는 사후 세계인 것은 그런 장르 관습을 따른 것이다. POB는 1841년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의 전신인 로열 음악 아카데미에서 '지젤'을 초연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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