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 확대하고 '겉멋' 국제 행사보다 리그 활성화 도모해야
엇갈린 운명 |
(도쿄=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한두 번 지면 자칫 방심했거나 실수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 번씩이나 진다면 분명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깨달아야 한다.
지금 한국 야구가 그렇다.
2000년대 초반 극심한 침체기를 겪던 KBO리그는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세계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 금메달, 2009년 제2회 WBC에서 준우승의 위업을 달성하며 세계 정상급 수준으로 발돋움했다고 자부했다.
KBO는 이런 국제대회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800만 관중' 시대를 개척했고, 제 9·10 구단을 잇달아 창단하며 외형을 크게 넓혔다.
선수들의 연봉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999년 11월 첫 자유계약선수(FA)로 계약한 송진우(당시 한화 이글스)가 3년에 7억원, 현 WBC 사령탑인 이강철 감독은 당시 해태 타이거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유니폼을 바꾸면서 3년에 8억원을 받았다.
그런데 불과 20여년 만에 FA 최고액 선수가 150억원대까지 폭등했다.
FA 자격이 없어도 다년 계약을 통해 100억원대 수입을 보장받는 선수도 나왔다.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SSG 랜더스 |
이들이 그만큼 탁월한 실력을 지녀서 그만큼 받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
그만큼 쓸만한 선수가 부족하다 보니 희소성으로 인해 몸값이 치솟은 것이다.
그런데도 10개 구단은 별다른 자각이 없다.
명색이 프로구단인데도 관중 증대나 마케팅 수입보다 오로지 한국시리즈 우승만이 모그룹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혈안이 된 10개 구단의 최대 관심사는 FA와 신인드래프트 제도뿐이다.
국제대회 성적에도 큰 관심이 없다.
잘되면 좋지만 못해도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설사 누군가 국제대회 부진에 '구단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더라도 10개 구단 사장과 단장은 'KBO 이사회'라는 익명의 그늘 밑에 숨어 직접 추궁당할 일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KBO 이사회 |
그러는 사이 한국야구는 국제무대에서 급격하게 추락했다.
2013년 제3회 WBC와 2017년 제4회 WBC에서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2021년에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도 빈손으로 돌아온 한국 야구는 이번 대회 역시 첫판부터 벼랑 끝에 몰렸다.
호주를 그렇게 우습게 보던 일부 전문가들의 큰소리도 쑥 들어가 버렸다.
'야구 월드컵'이라는 WBC가 출범한 뒤 다른 국가들의 기량이 급성장해 상향 평준화되는 흐름인데 한국 야구만 정체하거나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프로야구가 다시 시작하려면 KBO리그에 잔뜩 끼인 거품을 걷어내고 내부 경쟁력부터 키워야 한다.
10개 구단 서로 편하고자 외국인 선수들의 연봉 상한선을 100만달러로 제한한 규정도 풀고 무한경쟁의 무대를 마련해야 한다.
4년간 100억원 이상 받는 한국 선수들이 1년에 10억원밖에 못 받는 외국인들과만 경쟁하겠다는 게 '불공정 게임'이 아닌가.
인사말 하는 허구연 KBO 총재 |
KBO도 지나친 국제 행사보다 리그 내실을 다지는 데 더욱 집중해야 한다.
지난해 취임한 허구연 총재는 불과 1년여 만에 미국 출장을 세 차례나 다녀오면서 메이저리그(MLB)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모습을 보인다.
KBO는 지난해 11월 실무진의 우려 목소리에도 MLB 초청 대회를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막판에 무산되며 망신당했다.
최근에는 허구연 총재가 2024년 KBO리그 개막전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개최하겠다며 뛰어다니고 있다.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해' KBO리그 개막전을 미국에서 열겠다는 건지 대다수 팬은 물론 야구 관계자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혼자 추진하고 있다.
이번 WBC를 통해 여지없이 민낯을 드러낸 KBO리그는 이제 겉멋을 빼고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
이강철 감독의 대표팀이 기적처럼 1라운드를 통과하더라도 한국야구가 위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shoel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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