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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책&생각] 우리 모두는 먹이이고, 또 먹이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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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페미니즘 대표하는 발 플럼우드

생전에 쓴 글들 모아 국내 첫 소개

악어 먹이가 될 뻔한 경험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위치 재고


한겨레

Reflection of The spectacled cayman - Caiman crocodilus in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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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악어의 눈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

발 플럼우드 지음, 김지은 옮김 l 연두 l 3만원

‘에코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인 발 플럼우드(1939~2008)의 저작이 최초로 번역 출간되었다. <악어의 눈: 포식자에서 먹이로의 전락>를 쓴 플럼우드는 세 권의 책과 80편이 넘는 논문을 집필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로, <페미니즘과 자연의 지배>(1993)와 <환경 문화: 이성의 위기>(2002)는 페미니즘과 환경철학에 크게 기여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는 플럼우드의 책답게, 서문과 서론, 옮긴이의 말을 통해 플럼우드의 삶과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악어의 눈>은 플럼우드가 호주 카카두국립공원에서 혼자 카약을 타다가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사건에 대한 글을 중심으로 한다. 2008년 플럼우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원고가 완성되지 못했으나, 동물과 죽음, 포식에 관해 플럼우드가 생전에 쓴 글을 모으고 전체 세 장으로 엮어 출간되었다.

1985년 2월, 호주 카카두국립공원에서 혼자 카누를 타던 플럼우드는 너무 먼 곳까지 노를 저었다. 폭우가 땅을 덮치기 시작하는 우기 첫날이었다. 자신이 육즙과 영양분이 풍부한 몸을 가진 좋은 먹이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던 플럼우드는 현존하는 악어 중 가장 큰 악어이며 고대 공룡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알려진 바다악어와 눈이 마주쳤다. 바다악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포식자였으며, 인간의 눈에는 섬광으로 보일 정도로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다. “저는 퍼붓는 빗속에서 악어의 아름다운 금빛 얼룩무늬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카누에 서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까지 저는 제가 동물이자 필멸의 존재라는 점을 인식했던 것과 동일하게, 아주 추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방식으로 제가 먹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진실의 순간에 추상적 지식은 구체화됩니다. (…) 그 순간 악어는 물속에서 재빨리 뛰어올라 그저 섬광처럼 보일 뿐이었고, 저를 물속으로 끌어내리기 직전에 다리 사이로 저를 움켜잡았습니다.” 악어는 사냥할 때, 탈진시키거나 익사시키기 위해 먹이를 입에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 수차례 회전한다. 이것을 ‘죽음의 소용돌이’라고 부르는데, 플럼우드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세 번이나 당하고도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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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 페미니스트 생태학자 발 플럼우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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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플럼우드의 삶과 작업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플럼우드는 악어의 강력한 턱이 몸을 움켜잡는 순간 ‘잘못된 일’이 일어났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인간 존재로서 자신이 ‘먹이 그 이상’이라는 믿음이 훼손되었기 때문이었다. 깨달음은 그 굳건했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플럼우드는 악어의 눈을 통해 먹이사슬의 형태를 한 우주로 뛰어들었다. 그곳에서 플럼우드는 고등한 정신적 작용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라 몸집이 작고 먹힐 수 있는 동물의 형태로 바뀌었다.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해 온 비평가였던 플럼우드는 인간이 동물과 함께 자연적 질서에 포함된다는 합의를 비로소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먹이가 된다는 것은 체현의 현실, 우리가 먹이이자 살로서 동물적 질서에 포함된다는 점,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과 친족이라는 점을 냉혹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바로 잔치인 것입니다. 겸손하고도 매우 파괴적 경험입니다.”

플럼우드는 이 인식의 전환을 서구 문화 전체로 확장시킨다. 서구 문화는, 비인간의 세계 혹은 비서구의 세계가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를 멈추고 세계를 이야기 없는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프레야 매튜스, 케이트 리그비, 데버라 로즈가 쓴 서론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성과 노동계급과 피식민지와 원주민, 그리고 인간과는 다른 세계가 모두 자연과 연관된 용어들에 얽매였다. 연장선에서, 현대 서구 사회에서 자연의 지배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는 예속 당하는 많은 사회 집단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고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와 같다는 것이다.

악어의 먹이가 될 뻔했던 사건 말고도, 플럼우드의 삶에 곡절을 드리운 일은 더 있었다. 플럼우드는 시드니대학교를 졸업하고 동창인 존 매크레이의 아이를 임신했고, 이후 그와 결혼했다. 1958년에 첫째 아들이 태어났고 60년에 둘째 딸이 태어났다. 부담감과 빈곤 때문에 갓난쟁이 딸을 입양보냈는데 그 아이는 10대 때 살해 당했고, 아들은 20대에 퇴행성 질병으로 사망했다.

<악어의 눈> 4장의 ‘웜뱃 경야’는 야생 웜뱃의 죽음에 대한 글인데, 플럼우드는 자신의 아들이 사망하고 1년 뒤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초식성 동물인 웜뱃 한 마리를 데려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살았다. 비루비라 이름붙인 그 웜뱃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웜뱃 경야’다. 5장 ‘베이브, 말하는 고기의 이야기’는 가장 억압받는 주체인 돼지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상황을 효과적이고 변형적으로 표현한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가 던진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을 숙고한다. “폭력과 지배와 테러에 기초한 관계에 승리를 거두는 대안으로서 소통적 관계 형태가 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 글은 비인간 주체를 의인화해 표현하는 일이 불러올 수 있는 딜레마와 그 해결 방법을 함께 논한다.

플럼우드는 주인이기를 자처하는 서구의 주인 모델이 생태 위기를 초래했다고 바라보았다. 이 생각의 기저에 1985년에 악어에게 공격당한 사건이 있었다. 플럼우드가 보기에 위험한 야생동물을 피해 인간이 다닐 안전한 길을 만들거나 인간 중심의 환경 정책을 세우는 것은 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오만함을 벗겨내야 했다. 지금껏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가정을 버리고 생태적 관점에서 인간을 다시 위치시키는 동시에, 자연 영역에서만 그 존재를 인정 받았던 비인간 존재를 윤리적 관점에서 다시 위치시켜야 한다. 환경 문제가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이 시대에 플럼우드의 목소리가 더욱 큰 울림을 갖는 이유도 거기 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먹이이고 동시에 먹이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멋진 삶에서 우리 음식의 재료가 되는 이들과의 친족 관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먹이를 얻어야 합니다.”

이다혜 작가

한겨레

호주 바다악어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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