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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통치 능력 잃어가는 보수 정치 [신진욱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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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광주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4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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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총선 후 한달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윤석열 정부에서 아무런 변화도 감지할 수 없는 가운데,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20%대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3년 뒤에 나라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가는 곳마다 걱정들이다. 윤 대통령을 찍은 사람이나 찍지 않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총선에서 최대 변수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선거 후 여러 분석에 의하면 야당을 찍은 사람들은 많은 경우 무엇보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분노 때문에 투표소에 나갔고,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찍었던 적잖은 사람도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 때문에 이번에 야당을 찍거나 투표를 포기했다.



이런 민심은 단순히 인물에 대한 감정이나 특정 정책의 반대가 아니다. 문제는 훨씬 근본적이다. 국가 거버넌스 자체를 무너뜨린 독단, 남용, 무능 말이다. 김건희, 이종섭, 황상무, ‘대파’는 그런 사회 현실의 구체적 현현이다. 대통령 심판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모를 사람은 없지만, 현 지배 구조의 정점에 윤 대통령이 있기에 거기에 정치적 분노가 응축되고 거기서 변화의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문제가 어느 수준의 것인지를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가 이 정권을 보수 정권이라고는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국정 철학과 비전에 입각한 정책을 본 기억이 없다. 정부의 존재는 압수수색의 소식으로만 드러났고, 대통령의 지시가 모든 것에 우선했다. 즉,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국가 운영의 기본 자질, 민주사회의 최소한의 규칙이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어떤 기시감이 스쳐가는데, 그것의 정체는 바로 2017년, 촛불과 탄핵의 시간이다. 박근혜 정권의 붕괴는 어떤 정책의 실패 때문이 아니었다. 정부를 운영할 기본 자격이 안 되는 이들이 권좌에 앉아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공유되어 있었다. 그때 박 대통령 지지율이 20% 정도였다.



보수 정권하에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을 뿐 아니라 반복의 시간적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직후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했다가 ‘실용정책’으로 겨우 회복해 임기를 마쳤고,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부재’ ‘독재 회귀’를 줄곧 비난받다가 결국 4년차에 내려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취임 후 내내 ‘레임덕’ 상태였고, 3년차에 벌써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



이런 추세는 한국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학자들은 ‘87년 체제’로 불린 민주화 이후 정치체제의 특성이 민주주의의 제한성과 불안정성이라고 말해왔는데, 그런 특성은 더 나은 민주주의로 가는 이행 과정의 과도기 현상으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믿음은 지탱되기 어렵다. 한국 민주주의는 오히려 더 불안정해졌고, 민주사회의 근본가치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흔들리고 있다.



노태우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참여가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였고, 또 계속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그 합의를 깨면 안 된다는 도덕적 금기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엔 한국 정치의 양상이 달라졌다. 민주주의와 자유가 신장되다가도 정권교체만 되면 일시에 곤두박질치는 패턴이 반복된다. 한때 회자된 ‘이제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비가역적이다’라는 말을 지금은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국제적으로 신뢰받는 ‘민주주의다양성 지수’에서 한국은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에 조사 대상 국가 중 37위였으나 문재인 정부 때 13~18위로 올랐다가 올해 47위로 또 폭락했다. ‘국경없는기자회’ 언론 자유 평가에서 한국은 노무현 정부 후반인 2006년에 31위였으나 이명박 정부 2년차에 69위, 박근혜 정부 후반인 2016년에 70위로 주저앉았는데, 문 정부 때 41~43위로 회복했다가 올해 다시 62위로 미끄러졌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널뛰듯 오르내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보수 정치 내부의 근본 원인은 민주화 이후 독재와 단절하고 거듭나는 대신에, 그 반대로 왔다는 데 있다. 나치 패망 후 독일 기민련, 프랑코 사후 스페인 국민당은 보수 정당이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다양성의 가치를 수용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 정치는 이승만, 박정희에 자기정체성의 터를 잡고, 민주화 이후의 사회적 성취들을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인권 운동가로 위장하고 있다”고 한 것은, 1980년 5월 광주시민이 “간첩, 불순분자, 폭도에게 조종”되고 있다고 한 전두환 정권 홍보물과 똑같은 의식 구조다. 이 같은 과거 회귀는 고도로 발전되고 복잡해진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도저히 맞지 않기에, 민주주의의 후퇴뿐 아니라 통치 능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박근혜, 윤석열 정부의 ‘무능한 권위주의’다.



이토록 후진적인 보수 정치에 우리 사회가 거듭 권력을 내준 데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특히 민주적 정치세력들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지 못한 한계가 컸다. 대표적 예가 경제 문제다. 정치학자 아담 셰보르스키는 민주화한 나라들이 경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을 때 민주주의가 공고해진다는 이론을 발표한 바 있는데, 정확히 한국을 위한 메시지다.



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과 소득격차 급증, 집값 폭등, 문재인 정부 때 또 한번의 부동산 폭등과 자산격차 확대는 매번 정권교체의 치명적 원인이 됐다. 불평등한 민주주의에 실망해 권위주의 세력의 집권을 허락하고, 그다음엔 지금 같은 혼란을 겪은 뒤에 다시 민주주의를 찾는 도돌이표 역사 안에 우리 사회가 맴돌고 있는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 끊어야 한다.



대선이 있는 2027년까지 3년은 우리 사회가 경제, 외교, 기후 등 여러 중대한 도전을 헤쳐가야 할 시간이다. 그런 시점에 향후 윤석열 체제의 균열은 더 커지고 정국 혼란이 계속될지 모른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아래 나라가 표류하게 둘 수 없다.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를 이끄는 야당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과 비전으로 통치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민주주의의 능력을 입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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