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법·원자재법 초안 공개 예정…美IRA 대응·中의존 축소 목표
배터리 수요 급증 韓기업 수혜 기회…원산지·재활용 등 의무시 '골치'
'그린딜 산업계획' 구상 밝히는 EU 집행위원장 |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내주 역내 친환경 산업 육성을 위한 세부 대책을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한국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9일 관련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14일(현지시간)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과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초안을 각각 공개한다.
탄소중립법과 핵심원자재법은 둘 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우려되는 친환경 산업 유출에 대응하는 동시에 중국에 대한 광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EU의 종합대책인 '그린딜 산업계획'에 포함된 핵심 입법안이다.
외신에서 입수한 초안에 따르면 탄소중립법에는 태양광·배터리·신재생 수소 등 핵심 분야의 역내 제조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세부 목표가 담겼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탄소중립 관련 제조 역량을 연간 수요의 최소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법에서 지정한 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신규 사업 진행 시 허가에 필요한 기간을 단축해주고 우선 허가권을 부여하는 등 원활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대책이 담길 전망이다.
신규 사업 투자시 EU 회원국이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보조금 지급 규정도 완화하는 등 세부 대책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탄소중립법이 산업 육성에 초점을 둔다면, 같은 날 발표되는 원자재법은 친환경 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 및 다각화를 목표로 한다.
초안에는 '전략 원자재' 연간 수요의 10%를 역내에서 채굴하고, 가공과 재활용 역량은 각각 40%,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막강한 원자재 가공 산업 규모를 앞세워 EU를 비롯한 전 세계에 원자재를 수출하며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생산 중인 전기차 배터리 |
원자재법에는 EU 회원국 차원의 공동 이행·조율을 위한 '핵심원자재위원회' 신설 계획과 함께 신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신속한 인허가 및 자금조달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안 전문이 다 공개되진 않았지만, EU가 본격적으로 친환경 산업 육성에 나서는 만큼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수혜를 볼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유럽 내 수요가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현재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가 모두 진출해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3사가 이미 다 진출했고, 관련 유관 기업들도 진출이 확대되는 추세여서 향후 현지 시장에서 투자를 늘리거나 신규 사업을 할 때 신속히 허가를 받거나 보조금 지급도 수월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U 회원국이 자국에 진출한 기업에 보조금을 주기 위해서는 EU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그간에는 그 절차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그러나 EU 입장에서도 신규 투자 유치가 절실한 만큼, 앞으로는 세제 혜택을 포함한 보조금 규제가 상당 부분 느슨해질 전망이다.
EU는 지난달 말 헝가리 정부가 삼성SDI의 헝가리 괴드 배터리 1공장에 보조금 8천960만 유로(약 1천244억원)를 지급할 수 있도록 뒤늦게 승인 결정을 내렸는데, 최근 '달라진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헝가리 정부가 집행위에 해당 보조금 지급 승인을 요청한 건 지난 2018년으로, 1공장이 완공된 2019년 이후 최근까지도 결정이 나지 않다가 5년만에 전격 승인됐다.
현지에서 1공장에 이어 작년 4분기부터 2공장도 가동을 시작한 삼성SDI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 비중을 확대하는 점 등을 고려해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EU가 궁극적으로는 IRA처럼 중국산 탈피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에 불리한 조항이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부 있다.
EU 전문매체 유락티브는 탄소중립법 초안에 '공공입찰 선정 시 핵심원자재의 공급망 안정성에 대한 사업자의 기여도'를 평가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성격을 띤다는 일부 전문가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원자재법의 경우 EU에서 핵심 원자재 판매기업을 대상으로 '환경발자국' 현황 공개 요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발자국은 특정 상품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 현황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마찬가지로 중국을 우회 겨냥한 조처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도 원자재 상당 부분은 중국에서 수입을 할텐데, 원자재나 재활용 비율 등을 명시하는 조항이 포함되면 불리할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EU는 내주 탄소중립법과 원자재법 초안을 공개한 뒤 의견 수렴을 거칠 전망이다. 법안이 시행되려면 이후 집행위와 유럽의회, 이사회 간 3자협상 등 세부 절차를 거쳐야 한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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