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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탄생한 베토벤, 두 편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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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베토벤 아닌 보편적 인간에 집중

익숙함은 같지만 원곡 접근법은 달라

대극장 vs 소극장 다른 규모의 재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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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옥주현 주연 뮤지컬 ‘베토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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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휴대전화 벨소리나 자동차의 후진 경고음(‘엘리제를 위하여’)이었고, 또 어느 때는 숱한 광고 속 단골 음악으로 등장했다. 때로는 탱탱한 면발과 소스의 운명적 만남(오뚜기 진짜장)을 극적으로 살렸고, ‘신의 선물’과도 같은 식기세척기(LG디오스) 광고(‘운명 교향곡’)에도 강렬하게 흐른다.

우리 생활 곳곳에 음악으로 스며든 그 사람.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히트곡 메이커’이자 클래식 계의 ‘영원한 스테디셀러’인 베토벤이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한 편은 2200석의 대극장에서, 또 다른 한 편은 약 400석의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마주하게 됐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부 교수는 “한 인물을 소재로 한 뮤지컬이 다양하게 변주돼 2023년이라는 시공간, 특히 대한민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라며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할 경우 대중적 인지도의 상승 작용이 있어 작품 제작엔 여러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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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토벤'에서 베토벤 역을 맡은 카이.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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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극장 뮤지컬 ‘베토벤’(3월 26일까지·예술의전당)은 지난달 개막, 박효신 옥주현 카이 박은태 등의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몰이’에 성공한 작품이다.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벳’을 통해 국내에 유럽 뮤지컬 열풍을 몰고온 ‘거장 콤비’ 미하엘 쿤체(극작)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가 7년에 걸쳐 매만졌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에 참여한 창작 뮤지컬이다.

중소극장 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3월 12일까지·예스24 스테이지) 대학로 창작 뮤지컬의 신화다. 2018년 초연,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맞았다. ‘부부 콤비’인 추정화(극작, 연출)와 허수현(작곡, 음악감독)이 작품을 완성했고, 베토벤 차이콥스키 등 ‘작곡가 시리즈’를 꾸준히 올리고 있는 과수원컴퍼니가 제작했다.

원 교수는 “영화 쪽에선 ‘카핑 베토벤’, ‘불멸의 연인’ 등 다양한 작품이 나왔는데, 뮤지컬에선 지금까지 베토벤이 다뤄지지 않은 것은 도리어 신기할 정도로 매력적인 부분이 많은 소재”라고 말했다. 그만큼 할 이야기도 많고, 음악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편의 뮤지컬은 모두 베토벤의 원곡에서 무수한 음악이 태어났고, 베토벤의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상상의 나래를 폈다. 같지만 또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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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 [과수원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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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에서 출발…보편적 인간의 사랑 vs 꿈

‘베토벤’과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이하 루드윅)은 모두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악성 베토벤’의 삶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은 그것 자체로 드라마다. 청력 상실의 고난과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명작을 남긴 ‘불굴의 의지’의 상징이다. 뮤지컬은 이 서사에서 한 발 물러선다. 위대한 작곡가이기 이전에 보편적인 인간으로의 베토벤에 집중한다.

뮤지컬 ‘베토벤’이 찾은 것은 ‘불멸의 연인’이다. 작품은 특정 시기의 베토벤을 그린다. 1810~1812년, 40대 초반. 활동적인 중년 남성이자, “성공한 록스타 같은 존재”(미하엘 쿤체)였던 베토벤이 그 시절 운명적으로 얽힌 안토니 브렌타노(일명 토니)와의 위험한 사랑에 초점을 뒀다. 토니는 아이를 셋이나 둔 기혼 여성이다. 쿤체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가지던 베토벤이 결혼한 귀족 신분의 토니를 사랑하게 되면서 경계와 제약에서 벗어나 감정을 표출하며 변화하는 모습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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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토벤’은 1810~1812년, 40대 초반의 베토벤과 그의 불멸의 연인 토니(옥주현)의 이야기를 담는다. [연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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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베토벤이 자신의 ‘불멸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했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린 아웃사이더였고, 청력을 잃어가는 고통스러운 삶에서 몸부림칠 때 그를 구원한 여성이 토니라는 설정이다. 작품은 외롭고 상처 많은 영혼이 한 사람으로 인해 구원받는 과정을 그린다.

이들의 사랑과 만남을 그리기 위한 무대가 화려하다. 오스트리아 빈과 체코 프라하를 오가고, 프라하의 카를교를 무대로 구현해 아슬아슬한 만남을 담아냈다. 외골수 베토벤이 사랑에 빠지며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음악적 영감을 혼령으로 표현한 장면도 신비롭다. 하지만 베토벤과 토니의 ‘운명적 만남’에 대한 서사가 빈약하고, 사랑에 빠지고 장애를 극복하는 상황을 마주한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이 와닿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이 설득력을 얻지 못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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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 [과수원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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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은 베토벤의 인생을 관통해 무대로 가져오되, 각각의 에피소드를 삽입해 밀도를 높였다.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는 베토벤의 음악적 열망과 가족을 향한 집착이다.

‘루드윅’을 제작한 과수원컴퍼니의 허강녕 대표는 “베토벤의 전 인생에는 모차르트를 넘어서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꿈, 내 가족을 갖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이 작품에선 그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차별과 불공정의 시대에 맞서 여성 건축가로의 미래를 꿈꾸는 마리, 그와 함께 베토벤을 찾아온 ‘음악 신동’ 발터가 등장한다. ‘루드윅’이 그린 ‘가상의 인물’ 발터의 존재는 베토벤이 조카인 카를에게 헌신하게 된 계기와 이유를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작품은 대학로 뮤지컬을 즐겨찾는 관객들의 취향을 제대로 적중했다. 여러 시즌을 거치며 촘촘한 밀도로 완성도를 높였고, 적당히 자극적인 감정선을 오가는 ‘마라맛’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뮤지컬을 즐겨보는 관객들을 겨냥해 이들이 즐겨 찾는 인간 자체의 고뇌와 갈등, 괴로운 이야기에 깊이 파고들어 몰입도를 높였다”고 분석했다.

‘루드윅’의 무대는 작고 소박하다. 화려한 무대 전환도 없다. 무대 위엔 두 대의 피아노와 베토벤의 책상이 놓여있고, 8명의 캐릭터를 다섯 명의 배우와 피아니스트가 연기한다. ‘루드윅’에서 중년 베토벤 역할을 맡은 박민성은 “이 작품은 굳이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텍스트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대본의 힘이 큰 뮤지컬이다”라며 “위대한 음악가의 여정이자, 한 인간으로의 베토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꿈과 사랑, 음악과 자식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희노애락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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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유럽 뮤지컬 열풍을 몰고 온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벳’을 만든 세계적인 ‘뮤지컬 콤비’인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7년에 걸쳐 매만진 신작 ‘베토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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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극성의 차이…영리한 베토벤 음악 활용법

두 뮤지컬의 가장 큰 공통점이자 차이점은 바로 ‘음악’이다. ‘운명’, ‘영웅’, ‘전원’ 등 교향곡은 물론 무수히 많은 소나타에 이르기까지, 두 뮤지컬은 모두 베토벤의 원곡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원 교수는 “작곡가의 사후 50년 이후엔 음악 활용에 자유로움이 있어 저작권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베토벤의 원곡을 얼마나 영리하게 작품에 녹이느냐가 음악가를 소재로 한 뮤지컬의 큰 관심사”라고 했다.

작곡가들이 두 뮤지컬의 음악을 만들 때 했던 가장 큰 고민은 베토벤이라는 ‘익히 알려진 음악’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루드윅’을 작곡한 허수현 음악감독은 “이 작품을 하는데 베토벤의 음악이 없다면 공연을 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음악을 자칫 잘못 활용하면 너무 알려진 선율이라 극이 진행되는 드라마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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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 [과수원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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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두 작품이 원곡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진 않았다. 원곡 활용에 있어선 ‘베토벤’이 보다 적극적이다. ‘베토벤’에선 음악을 직접적인 소재로 접근했다. 특히 이 작품에선 원곡의 주선율 위에 가사를 입히는 시도가 많았다. 반면, ‘루드윅’은 간접적인 모티프로 활용했다. 하지만 두 편 모두 원곡의 주선율에 새로운 멜로디를 입혀 시대를 초월한 ‘음악적 만남’을 시도했다.

‘베토벤’의 경우 유달리 넘버(노래)가 많은 작품이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무려 52개의 넘버는 모두 베토벤의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협주곡을 토대로 태어났다. ‘불멸의 명곡’에 노래를 입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베스터 르베이는 “최대한 원곡의 음악적 선율을 가져왔고, 필요에 따라 멜로디를 작곡해 연결했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과 뮤지컬 음악의 접점을 만들어 ‘현대적인 감성’을 입히는 것이 음악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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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유럽 뮤지컬 열풍을 몰고 온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벳’을 만든 세계적인 ‘뮤지컬 콤비’인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7년에 걸쳐 매만진 신작 ‘베토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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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소나타’(피아노 소나타 14번)를 변주한 ‘매직 문’(MAGIC MOON), ‘코리올란 서곡’을 변주한 ‘그녀를 떠나’, ‘비창’ 2악장을 변주한 ‘사랑은 잔인해’(LOVE IS CRUEL), ‘운명’을 변주한 ‘너의 운명’ 등 익숙한 클래식 선율 위에 한국어 노랫말이 입혀졌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불후의 명곡’들이 뮤지컬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지만, 청중으로서 들을 때는 기분이 상당히 묘하다. 마치 해서는 안 될 ‘불경한 장난’을 치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흥미롭다. 너무도 익숙한 멜로디에 한국어 가사를 더하자, 통속적이지 않은 대중음악을 듣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검증된 가창력의 박효·옥주현의 넘버 소화력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법 우아하고 담담하게 넘버를 소화하는 옥주현도 재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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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 [과수원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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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윅’엔 다섯 개의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30번, 에그먼트 서곡 등 총 7개의 원곡이 사용됐다. 작품 안에선 원곡에 멜로디를 만들어 입히거나 편곡해 반주로 사용하는 등 여러 방법을 택했다. 허 감독은 “베토벤 음악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발췌, 그 전후를 연결시켜 새로운 멜로디와 하나의 음악처럼 들리도록 다듬었다”며 “제일 강렬한 클라이맥스 부분에선 베토벤의 음악이 들리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췄다”고 했다.

2막의 시작에서 루드윅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음악을 표현하는 장면에선 ‘운명’, ‘영웅’, ‘전원’ 교향곡과 ‘황제’ 피아노 협주곡이 쏟아진다. 작은 극장을 풍성하게 메우는 베토벤의 원곡은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루드윅과 조카 카를이 함께 노래하는 장면에선 ‘운명’ 교향곡 위로 멜로디를 붙였다. 루드윅이 카를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며 들려주는 신에선 배경 음악으로 ‘합창’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를 사용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시공을 초월한 음악의 활용은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음악의 힘’이 드라마를 압도해버린다는 우려도 있다. 중요한 것은 베토벤의 음악과 새로 작곡한 음악의 어울림이었다.

허 감독은 “베토벤 음악이 들리는 순간 드라마가 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관객들이 드라마를 보며 어느 순간 베토벤 음악에 빠졌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극 안에 녹아 들어가고, 다시 또 베토벤 음악에 심취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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