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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슈 뮤지컬과 오페라

탄탄한 스토리, 영화처럼 흥미진진…창작오페라 '양철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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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관객들도 매혹…연극 성공 원작을 오페라로

작곡가 안효영의 음악적 성취와 출연진 호연도 돋보여

연합뉴스

창작오페라 '양철지붕'의 한 장면
[오페라팩토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한국 창작오페라의 초연은 대체로 현대음악 전공자들과 오페라 관계자들의 축제가 되곤 한다. 일반 관객, 특히 젊은 관객층을 만족시키는 한국 오페라 초연은 매우 드물다. 음악이 대부분 난해하고 극은 느슨해 관객이 집중하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관객이라 해도 몰입할만한 극의 재미와 긴장이 있으면 창작오페라의 초연이라도 한 번 해볼 만하다. 대본이나 음악을 쉽게 써야만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의외성 넘치는 각본과 음악으로 관객의 뇌를 끊임없이 노동하게 만들어도 충분히 매혹할 수 있다.

지난 17~18일 오페라팩토리가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무대에 올린 안효영의 '양철지붕'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킨 보기 드문 수작(秀作)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했던 이 작품의 초연이 끝나자 17일 객석에서는 "정말 재밌네!","오페라가 이래야지!" 등의 탄성이 튀어나왔다.

이 작품의 원작 희곡 '양철지붕'(고재귀 작)은 2011년 경기도립극단 공모에 당선해 2012년에 연극으로 이미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신선하고 탄탄한 스토리와 시니컬하면서도 강렬한 언어적 표현 덕분에 오페라 역시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95분 내내 무대에 몰두할 수 있었다.

1987년 경기도 파주의 건설공사 현장에서 양철지붕으로 된 '함바집'(건설현장의 간이식당)을 운영하는 주인공 유현숙(메조소프라노 김선정)은 14년 전 언어장애를 지닌 여동생 유지숙(소프라노 박미화·배우 주은주)을 성폭행한 양부를 사고사로 위장해 불태워버렸다. 그런데 당시 유현숙을 도와 양부를 살해한 연인 구광모(바리톤 최병혁),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정체를 숨긴 채 이 공사장에 취업한 의붓동생 조성호(테너 강현욱)가 함바집으로 찾아온다.

구광모는 자신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쳤던 유현숙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하며 도박 비용을 갈취한다. 조성호의 정체를 알게 된 유현숙은 구광모의 손을 빌려 조성호를 살해하고, 자신을 짝사랑하는 작업반장 박기태(바리톤 박경종)의 손으로 구광모를 처치한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던 마지막 장면에서 박기태까지도 유지숙을 성추행하는 모습은 끊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폭력의 악순환을 뚜렷이 부각한다. 극 전반에 깔린 여러 복선이 스토리의 밀도를 더욱 끌어올려 몰입감을 더한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작곡가 안효영이 이룬 음악적 성취다. 전작 '텃밭킬러'와 '장총'에서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치밀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이뤄졌고, 음향적 대비는 귀를 사로잡는다. 각 인물 또는 특정 상황을 암시하는 음악적 모티브를 계속 발전시켜 극의 긴장감을 키웠고, 인물들 간의 갈등을 드러내는 이중창을 극적 긴장의 절정에 위치시켰다.

연합뉴스

창작오페라 '양철지붕'의 한 장면
[오페라팩토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건설 현장 노동자 정갑수, 반성웅, 김진구 역을 맡은 테너 노경범, 위정민, 바리톤 한진만의 앙상블을 통해 작곡가는 무겁고 비극적인 극의 분위기에 음악적 유머를 불어넣었다. 유지숙이 부르는 '세상은 듣지 않아' 등 호소력 있는 노래들도 있었지만, 이야기의 효과적 전달을 위해 아리아의 유려함을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했다.

안효영은 "리얼리즘을 방해하는 아리아는 필요 없다고 결론을 내렸고, 대신 오케스트라가 많은 것을 설명해주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말의 리듬을 살리는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의 성악 창법)를 적절히 사용한 점도 돋보였다. 튜블러벨, 글로켄슈필, 실로폰 등 다양한 타악기의 음향 역시 작품 곳곳에서 적절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연출가 장서문의 무대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천장에 달린 여러 면의 양철지붕이 열리면서 복날 더위처럼 축축 늘어지는 장면, 갈등이 고조되면서 지붕이 한꺼번에 닫혀 공포와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장면 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현실에 실재하는 것처럼 개성 있고 생생한 연기를 보여줬고, 움직임의 동선 역시 설득력이 있었다. 자주 등장하는 폭행 장면들이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음악과 어우러진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장애를 지닌 유지숙 역을 무대 위에서 배우가 수화로 연기하고 무대 아래서는 성악가가 노래하게 해 극적인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탁월한 성악적 기량을 바탕으로 혼신을 다해 분노와 절망을 표현한 출연진 모두가 이 작품의 초연을 빛냈다. 천안시향 상임지휘자 구모영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연주하기 어려운 초연작에 담긴 다양한 색채의 음악적 요소들을 투명하게 또 역동적으로 전달했다.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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