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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경성]핸들잡던 운전수 조영은, 일약 오페라 가수 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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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日 전설적 소프라노 미우라가 발탁한 獨學生, 빅터음반사 전속 대중가수로도 활약

조선일보

진남포에서 택시를 몰던 조영은은 1936년10월24일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남녀음악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독학으로 공부한 조영은은 일본의 전설적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에게 전격 발탁돼 오페라 가수로 활약했다. 조선일보 1936년10월 28일자 기사


택시 운전수로 일하던 스물다섯살 청년 조영은(曺永恩)은 1936년 11월14일 평양공회당을 찾았다. 일본의 전설적 소프라노 미우라 다마키(三浦環·1884~1946)의 리사이틀을 보기위해서였다. 미우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비롯해 런던, 밀라노, 로마, 피렌체, 나폴리 오페라극장에서 ‘나비부인’ 주역 초초상에 2000회나 출연한 오페라 스타였다. 1935년 시칠리아 팔레르모 극장에서 2000번째 초초상을 부른 그는 그해 말 일본에 영구 귀국했다.

평양 공연이 끝난 후 조영은은 면회를 청했다. 즉석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였다. 스페인 작곡가 이라디에르(1809~1865)의 ‘라 팔로마’를 부른 조영은의 목소리에 미우라는 ‘오케이’를 연발했다. 미우라는 즉석에서 문하생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수락했다. ‘원체가 음악을 좋아하여 핸들을 손에 잡고도 일상 성악연습을 해왔던’ 조영은이 도쿄로 성악 유학을 떠나게 된 것이다.(‘삼포환 부인에게 격찬받은 조영은군’, 조선일보 1936년11월18일)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남녀음악콩쿨에서 택시운전수 출신 조영은은 2위를 차지했다. 가운데 사진은 1936년 10월24일 열린 결선대회 장면. 조선일보 1936년10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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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포에서 택시 몰던 조영은

평양 출신인 조영은은 숭실중학을 다니다 중퇴한 후 진남포에서 택시를 몰고 있었다. 당시로선 수입이 괜찮은 직업이었지만 노래에 대한 꿈은 포기할 수없었던 모양이다. 휴대전화 외판원을 하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스타로 떠오른 영국 팝페라 가수 폴 포츠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조영은은 무명(無名)은 아니었다. 한달 전인 1936년 10월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남녀음악콩쿨(전조선남녀음악현상경연회)’에서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3분야에서 펼친 이 콩쿠르는 김영환 홍난파 박경호 계정식 채동선 김원복 정훈모 박태준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심사위원을 맡은 대회였다. 종합 1위는 바이올린 분야 문석준이 차지했다. 2위 입상자는 3명인데, 조영은은 성악 분야에서 남궁요설과 함께 2위를 차지했다.

조영은은 ‘음악공부를 한지 4~5년 밖에 안된다’면서 ‘자동차회사의 일을 보면서 그 여가에 자습을 하다시피 했으니 저의 실력이 변변할 수야 있습니까’라고 입상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차부(車部)의 일은 현재 생활을 위한 직무라 갑자기 버릴 수 없지만 이 환경에 있어서도 꾸준한 노력으로 사도에 정진할 각오’(‘독학한 우리에겐 첫째 지도자난’, 조선일보 1936년10월28일)라고 했다. 그의 소망은 음악을 배울 만한 스승을 찾는 일이었다. 그런 그가 콩쿠르 입상 한 달도 안돼 세계적 성악가 미우라 문하에 들어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조선일보

1936년 도쿄 긴자의 가부키좌에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공연한 미우라 다마키와 테너 김영길. 미우라는 '나비부인' 초초상을 2000번 넘게 부른 세계적 소프라노였다. 미우라는 1936년 11월 평양 공연을 왔다가 조영은을 문하생으로 발탁했다. 조영은은 1937년5월27일 경성 부민관에서 열린 '나비부인' 전막 공연에서 미우라 상대역 핀커튼을 불렀다.


◇미우라, “세계적 테너로 만들어 드릴 것”약속

그가 언제 동경으로 건너갔는지는 정확치 않다. 하지만 조선일보 1936년11월18일자 기사에 ‘근일중 동경에 건너가 삼포환 부인의 문하에서 정식으로 노래를 연구하게 되었다한다’고 나온 것으로 보아, 1936년말이나 늦어도 1937년 1월중에는 동경에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조영은은 미우라 집 2층 피아노실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피아노와 성악 수업을 받았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미우라가 1937년2월8일자로 조선일보에 보내온 편지에 따르면 ‘(연습) 일주일이 못되었는데 벌써 놀라운 진경을 보이며 ‘마담 버터플라이’의 상대역인 미국해군사관의 역을 맡게 되었다’고 썼을 정도다.

미우라는 ‘동씨의 성음은 아름답고 굳세며 성량이 풍부한 점에서 제가 들어본 음악가 중에서는 볼 수없이 훌륭한 소질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이 분이 세계적 무대에 나아간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뛰어날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다 돌아온 미우라는 작품 상대역을 찾기 어려워 서양 성악가를 데리고 왔는데, ‘저의 가장 이상적인 상대역 조영은씨를 발견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미우라는 ‘공부가 웬만치 된 다음에는 조씨를 키워준 조선의 여러분께 조씨의 핀커튼을 들려드리기 위하야 저와 함께 여러분을 찾을 때가 있으리라고 믿습니다’고 썼다. 미우라는 ‘조씨를 세계적 테너를 만들어 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조선 첫 전막오페라 ‘나비부인’ 남자 주역 맡아

미우라의 칭찬은 빈 말이 아니었다. 조영은은 1937년 3월 29일부터 닷새간 미우라의 시즈오카 방면 연주여행에서 핀커튼역으로 데뷔했다고 한다. 일본 유학 5개월도 채 안돼 조영은은 금의환향했다. 그해 5월26일과 27일 경성 부민관에서 열린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핀커튼 역에 김영길과 더블캐스팅으로 무대에 섰다. (’삼포환 내연(三浦環 來演)’,조선일보 1937년5월27일) 미우라는 귀국 직후인 1936년 6월 도쿄 긴자의 가부키좌에서 올린 ‘나비부인’ 전막 공연에서도 김영길과 주연을 맡았다.

부민관 공연 첫날인 26일은 김영길, 27일에 조영은이 핀커튼을 불렀다. 조선 땅에서 열린 첫 전막 오페라에서 당당히 주역을 맡은 것이다. 프리마 돈나는 물론 미우라 다마키였다. 일본 중앙(中央)교향악단(NHK교향악단 전신), 미우라 다마키 합창단 등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까지 일본에서 건너왔다.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가 후원한 이 공연 티켓 최고가 특등석은 5원, 일등석은 3원이었다.

◇빅터사에서 대중가요 취입

조영은은 오페라 데뷔 직전, 메이저 음반사 빅터 소속으로 대중가요 음반을 취입했다. 한국가요사 연구자 박찬호에 따르면, 1937년 3월에 나온 ‘그때를 생각하면’이 데뷔 음반이었다. 김해송이 작사, 사사키가 작곡을 맡았다. 처음부터 클래식과 대중가요를 두루 맡은 드문 사례였다. 이어 4월 신보에서 ‘달려라 청춘마차’(이부풍 작사, 형석기 작곡)를 불렀다. 그해 4월10일부터 29일까지 조선 북부 지방에서 열린 ‘빅터 대연주회’에도 참가했다. 11월엔 ‘끝없는 방랑’(조용곤 작사, 김송규 작곡)을 냈다.

‘내 가슴을 아느냐’(이부풍 작사, 박용수 작곡), ‘정한(情恨)의 홍사등(紅絲燈)’(박화산 작사, 이기영 작곡)도 잇따라 발표했다. 음악학자 송방송에 따르면, 조영은은 이외에도 ‘청춘비가’, ‘물새야 우지마라’(이기영 작곡) 등 빅터에서만 7곡을 취입했다.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음반 ‘행복지대’(이부풍 작사, 전수린 작곡, 1938년 11월), ‘다시 만날 때까지’(이부풍 작사, 형석기 작곡, 1939년1월)까지 합하면 9곡이다. 아쉽게도 ‘청춘비가’, ‘물새야 우지마라’ 음원은 확인하지 못했다.

유튜브에선 조영은 음반을 대부분(7곡) 들을 수있다. 고음에 미성인데다, 매우 자연스럽게 대중가요를 소화한다. 하지만 오페라 아리아나 가곡 음원을 찾지 못해 본격적 성악 역량을 확인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한국음악사에서 조영은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대중가요 연구자들이 유행가 음반을 낸 조영은을 간간히 언급할 뿐이다. 조영은의 1940년대 이후 행적은 미스터리다. 한국가요사 연구자 박찬호는 ‘그의 발자취는 알 수가 없다’(‘한국가요사’72쪽)고 했다. 조영은은 한국 음악사에 갑작스레 등장했다가 홀연히 사라진 스타였다.

◇참고자료

박찬호 지음, 안동림 옮김, 한국가요사, 현암사, 1992년

송방송, 한겨레음악인대사전, 보고사,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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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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