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교사 30만명 공무원 10만명 “못살겠다”...영국에 무슨 일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교사·공무원·기관사 등 50만명 참가
2만개 학교 휴교... 재택근무 속출
임금 인상·근무환경 개선 요구

식료품 17% 오를 때 임금 4% 하락
수낵 총리 리더십 시험대


매일경제

영국 파업 노조 행진 [로이터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임금 인상과 근무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근로자 약 5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영국 사회에 약 10년 만에 최대 규모의 파업 폭풍이 휘몰아쳤다. 대대적 파업으로 열차가 멈춰서고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취임 100일을 맞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의 리더십이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영국 최대 노조인 노동조합회의(TUC) 소속 대학 교직원과 교사, 공무원, 철도 기관사 등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과 근무 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파업에 나섰다. TUC는 교사 30만명과 120여개 정부 부처 등의 공무원 10만명 등을 포함해 최대 50만명이 파업에 동참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는 지난 2011년 약 100만명이 참여했던 파업 이후 10여년 만의 최대 규모다.

이날 진행된 파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학교가 문을 닫아 수만명의 학생들이 등교를 못 했고 열차가 멈춰 서 직장인들은 출근 대신 재택근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교사 노동조합인 전국교육노조(NEU)는 이날 잉글랜드와 웨일스 공립학교 중 85%에 달하는 2만3400여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영국 전역의 열차 중 3분의 1 가량의 운행 역시 중단됐다. 일부 노조원들이 거리로 뛰쳐나가면서 영국박물관까지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구급차 운전기사로 일하는 마커스 데이비스(50)는 “딸의 대학 학자금과 매달 나오는 공과금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매일 초과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파업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오르는 물가 상승률과 비슷한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파업을 계기로 그동안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따라가지 못했던 공무원 등의 임금 인상 속도로 인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에너지 가격 급등은 영국 사회의 불만을 터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칸타는 지난달 영국 식료품 가격이 17% 가량 급등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공부문 임금은 2007~2022년 사이 평균 4% 하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영국이 올해 주요국 중 유일하게 성장률이 후퇴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IMF는 지난달 30일 발간한 세계경제전망(WEO) 보고서에서 올해 영국 경제 성장률이 -0.6%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주요 경제국 중 유일한 역성장 전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 성장률(0.3%)보다도 낮은 수치다.

일각에서는 IMF의 전망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의견이 나오지만,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의 경제 규모로 되돌아가지 못한 주요 국가는 영국이 유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영국 체감 경기를 반영하는 2023년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 지수(PMI)는 47.0으로 집계됐다. 전월(45.3) 대비 1.7포인트 개선됐지만 경기 확대와 축소를 가름하는 50을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연속 밑돌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70년대 ‘유럽의 병자’였던 영국이 올해에는 ‘선진국의 병자’로 거듭났다고 진단했다.

영국 정부는 노조와 접촉을 이어가면서 긍정적인 해결책을 모색 중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5% 임금 인상’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물가 상승 속도를 봤을 때 임금 인상 폭이 지금보다 더 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몇 달 동안 임금 인상에 필요한 추가 기금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으로 간호사와 구급차 운전기사 등의 추가 파업이 예고된 만큼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질리언 키건 교육장관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린 노조의 선택에 실망스럽다“며 ”정부와 노조의 협상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공공부문 임금 설정을 위한 노조와의 협상 때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더 개입하고 간섭하려는 영국 정부의 특성이 이번 대규모 파업에 불을 붙였다고 지적했다. 앨런 매닝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LSE)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임금 인상 폭을 줄이기 위한 합당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인플레이션이 알아서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