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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슈 공공요금 인상 파장

난방비 폭탄 후···집집마다 ‘질문 폭탄’ 받는 가스 점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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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원 하루 동행해보니

경향신문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김윤숙씨가 1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다세대주택에서 가스사용량 검침과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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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안전점검원 김윤숙씨(55)는 요즘 자다가도 읊을 수 있는 말이 있다. “고객님 작년에 가스 요금이 그 전년보다 34.3% 이상 올랐어요. 또 12월에 한파가 갑자기 왔잖아요···.” 점검을 위해 가정을 방문할 때마다 날아드는 질문 때문이다. 왜 이렇게 올랐냐, 다음 달엔 더 오르냐, 보일러가 고장난 게 아니냐… 질문은 각양각색이다.

난방비 고지서에 찍힌 액수를 납득하지 못하는 시민들의 불안과 불만은 현장에서 얼굴을 맞대는 도시가스 점검원들을 먼저 향한다. 경향신문은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김씨와 동행하며 ‘난방비 대란’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난방비 대란 이후, 한 집에서 걸리는 시간이 늘었다


김씨는 요즘 상반기 가스 안전 점검을 위해 담당 구역을 돌고 있다.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은 상·하반기 각 1회씩 가정을 방문해 보일러와 가스밸브 등에서 가스가 새지 않는지, 배관에 문제는 없는지 확인한다. 3600세대를 담당하는 김씨는 매일 70~120가구쯤을 돈다. 문을 열어주는 곳은 30~35가구. 사람이 없는 곳은 3번까지도 들른다. 원래 바쁜 발걸음은 난방비 대란 이후 더 바빠졌다. 추가 점검을 해달라는 요청도, 난방비가 왜 이렇게 나오냐는 질문도 급증했다. 자신을 붙들고 질문을 쏟아내는 시민들을 김씨는 떨치고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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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대란 기획>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김윤숙씨(오른쪽)가 1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가정에서 최근의 난방비 폭등과 관련해 주민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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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씨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전날 센터로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는데 계량기를 확인해도 모르겠다”며 점검 요청을 한 이경옥씨(76)네였다. 집 앞에 도착해 전화를 하자 이씨가 버선발로 1층까지 뛰어 나왔다.

20평 집에서 아들과 둘이 사는 이씨는 지난달 난방비로 30만7890원을 청구받았다. 그 전 겨울에는 가장 많이 낸 금액이 16만원이었다. 다음 달에 50만~60만원이 나올까 걱정돼 점검을 신청했다는 이씨는 “설에 전 부치다 확인했는데 심장이 막 뛰고, 아무 것도 못먹겠더라”고 했다. 김씨는 핸드폰 계산기로 그간 돌아간 계량기 숫자를 보여주며 ‘사용량 추이를 봐선 지난달만큼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씨를 안심시켰다. “저번 달 금액도 맞긴 맞다는 거네.” 30만원짜리 고지서가 잘못된 것이길 바랐던 이씨가 풀 죽은 채 말했다.

김씨는 이씨처럼 ‘다음 달 요금’을 걱정하는 고객이 최근 확연히 늘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방문 점검을 할 때마다 “앞으로 가스비가 오를 것이다” “다음 달엔 추이를 봐서 어느 정도 나올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시민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새가 없었잖아요.” 콜센터에 몰리는 항의전화도, 집집마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도 수긍이 간다고 김씨는 말했다.

시민들은 김씨와 동행한 기자에게도 “TV에선 지원금이 나온다던데, 언제 나오는 거냐”는 질문을 빈번히 던졌다.

송모씨(68)는 “대통령이 중산층 지원해주라고 했다는데 맞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췌장암 수술 이후 항암치료 중인 그는 이번 달 27만6000원을 찍은 난방비 고지서를 받았다. 송씨는 “앞으로 더 오른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초수급자 전모씨(76)도 지난달 난방비가 12만원 나왔다. 에너지바우처를 다 소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3월까지 내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이상해서 가스회사랑 동사무소에 전화를 했다”며 “너무 부담돼 보일러를 틀 수가 없다”고 했다.

이들을 마주하는 김씨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김씨는 “아직 현장에선 매뉴얼이 나오지 않았으니 조금 더 기다리시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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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안전점검원 김윤숙씨가 1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검침과 안전점검을 위해 한 가정집의 문을 두르리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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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김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총 82가구의 대문 앞에 서서 “도시가스입니다!”를 두 세번씩 외쳤다. 문을 연 집은 30곳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좁은 곳의 계량기·보일러를 확인하는 일에 더해 시민들의 불만과 짜증 섞인 반응을 마주해야 했다. 난방비 급등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감정노동’이었다.

김씨가 이날 만난 한 고객은 거듭된 설명에도 “아무리 그래도 가격이 너무 이상하다”며 김씨와 실랑이를 벌였다. 신경질을 내는 이를 붙잡고 김씨는 20분 가량 ‘왜 이 난방비가 맞는지, 왜 금액이 올랐는지’ 설명했다. 그나마 기자가 동행한 터라 사정이 나았다. 김씨는 혼자 근무하는 평일에는 화풀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분은 ‘전쟁을 우리가 일으킨 것처럼 화내더라’고 하던데요.” 김씨가 지친 웃음을 지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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