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난방비 폭탄 앞 단발성 대책과 포퓰리즘이란 덫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김정덕 기자]
더스쿠프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난방비 대책을 간헐적으로 내놨지만 효과는 없었다.[사진=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난방비 폭탄'을 맞은 국민의 원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성난 민심에 놀란 윤석열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대책을 마련하는 속도가 느린 데다 내용마저 단편적이어서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놔야 할까. 학자 3명에게 물어봤다.

폭탄 수준의 난방비 고지서 탓에 민심이 흉흉하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 "빨리 대책을 내놓으라"는 압박성 요청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윤 정부 입장으로선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지난해 가스요금이 오를 때만 해도 국민적 저항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도시가스 요금은 네차례 인상됐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2022년 1월 MJ(메가줄ㆍ열량단위)당 14.2원에서 10월 19.7원으로 5.5원(38.7%) 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방비 폭탄' 얘기는 거의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인상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1월 기준 MJ당 14.2원이던 도시가스 요금(서울 기준)은 4월 14.7원으로 0.5원(3.5%) 올랐고, 5월에 15.9원으로 1.2원(8.2%)이 인상됐다. 7월과 10월에도 각각 1.1원(6.9%), 2.7원(15.9%) 올라 19.7원이 됐다.

이를 서울 4인 가구의 월평균 도시가스 사용량(2000MJ)에 대입하면 인상분은 그리 높지 않다. 2022년 1월 도시가스 요금은 2만8400원이었는데, 4월 2만9400원(1000원), 5월 3만1800원(2400원), 7월 3만4000원(4600원), 10월 3만9400원(5400원)으로 인상됐다. 가랑비에 옷 젖듯 요금이 올라간 셈이다.

게다가 4~10월은 난방비를 걱정할 만한 계절도 아니었다. 난방비 고지서를 받기도 전이었으니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실감할 수 없었던 거다. 지난해 12월 고지서를 받은 후에야 실제 도시가스 사용량과 월평균 사용량에 괴리가 드러난 이유다.

하지만 국민이 도시가스 요금 인상의 여파를 뒤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정부 대책도 그 속도에 맞춰야 하는 건 아니다. 정부는 오랜 기간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국민의 부담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도시가스 요금 인상 이후 간간이 난방비 대책이 나온 걸 보면, 정부도 이런 상황을 짐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책의 실효성이 있었느냐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방향성을 잘못 짚거나 내용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10월 28일 기획재정부는 '겨울철 서민 난방비 부담 경감'을 이유로 11월부터 한시적으로 액화천연가스(LNG)와 액화석유가스(LPG) 관세를 0%까지 내리기로 했다. 수입물가가 낮아지면 가스 구입 가격도 내려가니 도시가스 요금도 떨어질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민간사업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도시가스 요금은 내려가지 않았다. 정부가 시장에 가격을 낮추라고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류세를 낮춰도 정유사와 주유소가 유류세 인하분을 반영하지 않아 기름값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2월 28일에는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여성가족부가 공동으로 '겨울철 취약계층 난방비 특별지원대책'을 내놨다. 취약계층에 55억원 상당의 연탄ㆍ등유 등을 한시적으로 추가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1월 26일에는 대통령실이 에너지바우처 지원 확대와 가스요금 할인폭 확대를 골자로 삼은 대책을 내놨다.

취약계층 117만6000가구에 15만2000원씩 지급하던 에너지바우처 금액을 올 겨울 한시적으로 30만4000원으로 2배 늘리고, 사회적 배려 대상자 160만 가구를 대상으로 한국가스공사의 도시가스 요금 할인폭을 9000~3만6000원에서 1만8000~7만2000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책을 내놓은 점은 긍정적이지만, 허점이 많다. 우선 취약계층의 기준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설정했다. 전국의 기초수급자는 지난해 12월 기준 235만9228명에 달하는데, 고작 절반(49.8%)에게만 혜택을 줬다.

에너지바우처 대상에 속하지만 신청을 하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한 가구가 지난해 기준 14만9000가구(12.7%)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책 효과 기대치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효성 없는 정부 난방비 대책

취약계층에는 속하지 않지만, 난방비 급등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계층을 위한 지원책은 없었다. 지난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뒤늦게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추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준비된 정책이 아니어서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기 바로 전날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난방비 폭탄' 사태를 두고 대책을 묻자 "당장 특별한 대책이 없다"고 답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당일 국무회의에서 "시장 상황에 맞게 가격을 조정하지 않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며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에너지 전문가는 "올해 1월 정부가 산업용 도시가스 요금만 소폭(2022년 12월 33.3원→올해 1월 31.3원) 낮춘 걸 두고 국민의 원성이 자자한 건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럼 윤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놔야 할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도시가스 요금을 정상화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그런 만큼 취약계층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면서 "일정한 소득액 이하의 계층에는 소득 구간별로 지원 비율을 다르게 해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원 구간을 좀 더 넓히자는 거다.

다른 의견도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에너지정책학) 교수는 "차상위 계층까지 지원하려면 재원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면서 "취약계층에 한정해서 충분한 지원책을 내놓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수혜를 입은 기업들에 적정 비율의 횡재세(추가 법인세)를 부과한 다음 거기서 만든 재원으로 좀 더 보편적인 지원책을 펼치자는 거다.

실제로 도시가스 관련 업체들의 2022년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올랐다. 천연가스 발전 사업과 도시가스 공급 사업을 하는 SK E&S의 영업이익은 4457억원에서 1조4707억원으로 230.0% 늘어났고, 서울도시가스(대성그룹 계열)는 24억원 적자에서 90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횡재세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닌 셈이다.

좀 더 본질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지원책을 내놓고 기준을 나눠서 지원하면 오히려 갈등만 키울 수 있다"면서 "매년 여름과 겨울이 오면 기준이 천차만별인 단발적이면서도 시혜적인 지원책을 내놓는데, 그거야말로 진짜 포퓰리즘"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취약계층의 살림살이는 언제나 힘들다"면서 "때론 단발성 정책도 필요하겠지만 취약계층이 평소에도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득지원정책을 마련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