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와 읽기로 손과 눈이 놀았다. 거의 연중무휴로 시의 시간을 살았다.” |
고은(90) 시인이 최근 시집 ‘무의 노래’를 내며 이렇게 작가의 말에 썼다. 지난 2017년 최영미 시인이 ‘괴물’이란 시로 고 시인의 성추행 사실을 밝힌 이후 활동을 중단하다 5년 만에 공식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고 시인의 공식 사과 없는 활동 재개를 두고 문단 안팎에서는 ‘미투 사태’ 이후 문단의 자정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0일 출판계에 따르면, 실천문학사는 최근 고 시인의 등단 65주년을 맞아 시집 ‘무의 노래’와 함께 캐나다 시인 라민 자한베글루의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를 출간했다.
고 시인은 미투 이후 외부활동은 하지 않은 채 작품에 전념했다. 그는 이번 ‘무의 노래’를 내며 “시집 ‘초혼’과 ‘어느 날’이 나온 뒤로 5년”이라며 “몇 날 며칠을 읽어야 하는 긴 서사시의 교열을 뒤이어 내 오장육부의 완연한 파도들이 울긋불긋 시편들로 쌓여왔다. 이런 날들의 평상 가운데서 나의 황홀한 플랑크톤 빛 알갱이들이 남몰래 춤추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대담집 ‘고은과의 대화’는 캐나다 시인이며 소르본 대학 출신 정치철학자 라민 자한베글루가 고은과 나눈 대화를 엮어 지난 2020년 인도에서 출간한 원본을 실천문학사에서 번역 출간한 것이다.
책은 고은 시인의 삶과 사상, 118편의 주요 시들이 실려있다. 유년기의 기억과 부모님, 식민지 교육과 한국전쟁, 자살 시도와 시인들과의 만남, 정치적 활동 등 전기적 사실과 시에 대한 시인의 철학을 집중적으로 묻고 답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자한베글루는 서문에 해당하는 ‘시인의 춤’이란 글에서 “나는 독자들의 영혼 속에 고은 시의 강렬한 속삭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내가 고은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을 전 세계 사람들의 우편함에 넣을 수 있는 우체부가 되고 싶었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어떤 점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완성된 시詩 작품이다. 고은에게 쓰기란 말하지 않은 것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며 “그는 언어를 소유하지 않는다. 언어가 그를 소유한다”고 시와 시인이 하나된 삶을 강조했다.
고 시인의 시집 출간 등에 대해 성추문 사건 이후 피해자나 독자에게 공식적인 사과 한 마디 없이 활동을 재개했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성폭력 가해자가 작품으로 과거의 잘못을 지우고 한국의 대표 시인으로 자리매김해선 안된다는 비판이다. 작가의 시대를 인식하는 윤리성 문제도 제기된다. 시와 삶의 괴리에서 미학적 진정성을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문단의 대응에도 비판의 화살이 쏠린다.
이에 고 시인의 복귀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문학전문지 ‘뉴스페이퍼’는 트위터를 통해 ‘고은 문단 복귀 적절성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1989명 중 1973명(99.2%)이 그의 문단 복귀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앞서 고 시인은 최영미 시인이 지난 2017년 ‘황해문화’ 겨울호에 발표한 ‘괴물’이라는 작품 이후 성추문 사건에 휘말렸다. 이어 최 시인이 다음 해 2월 일간지를 통해 고 시인의 성추행 목격담을 공개하자 고 시인은 그해 7일 최 시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는 1, 2심에서 모두 패소했고, 대법원 상고는 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이윤미 선임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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