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설적 실험극단 리빙시어터와 극공작소 마방진이 함께 제작한 한미 합작 연극 <로제타>의 시연 장면. 두 나라 배우 8명이 모두 로제타란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 옐로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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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상업 연극에 맞선 ‘오프 브로드웨이(Off Broadway) 운동’의 기수이자 미국 최초 아방가르드 극단인 ‘리빙시어터’(The Living Theatre)가 한국 관객과 처음 마주한다. 현대연극사에 굵직한 자취를 새긴 이 전설적인 극단이 극공작소 마방진과 연극 <로제타>를 함께 제작해 한국과 미국 무대에 올린다. 오는 13~14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시범공연 이후 내년 본공연과 뉴욕 공연으로 이어진다.
“1947년 창단한 리빙시어터는 미국 슈퍼볼보다 오래됐다.” 배우로도 활동 중인 브래드 버지스 리빙시어터 대표가 최근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전통의 파괴와 새로운 실험이라는 두 바퀴로 진화해온 현대연극에서 이 극단은 중추의 역할을 해왔다. 주디스 멀리나와 줄리언 벡 부부가 만든 이 극단은 격동했던 60년대 실험연극의 정점에 있었는데, 무정부주의 색채를 띠며 반전, 인종차별 반대, 여성 해방 등의 메시지를 파격적인 표현 방식에 실어날랐다.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등 할리우드 명배우들도 이 극단을 거쳤다. <브로드웨이를 넘어>의 저자인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는 “리빙시어터는 지금도 전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극단”이라며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연극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버지스 대표는 “관객이 극장을 떠날 때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싶어지길 소망한다”며 “이것이 우리가 연극을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 문화재청 제공 |
한미 합작 연극 <로제타>는 실존 여성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이 쓴 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1890년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온 의사 로제타는 최초의 여성 병원을 설립하는 등 차별 속에 살던 조선 여성에게 근대 교육과 의료의 길을 낸 인물. 전염병으로 남편과 딸을 잃는 아픔 속에서도 한글 점자를 개발하고 결핵 치료를 위한 크리스마스실을 도입하는 등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리빙시어터 출신인 연출가 김정한(요셰프 케이)은 “리빙시어터가 추구한 무정부주의와 사랑의 정신이 로제타가 추구했던 삶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이 극단에 협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로제타란 인물에 빠져든 개인적 계기가 있었다. 몇년 전 양화진 절두산 순교 성지를 방문했다가 읽은 로제타의 일기였다. “그곳에 전시된 일기에 삐뚤빼뚤한 한글로 ‘하나님, 나 어찌할 바 모르겠사오니 도와주소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이 너무 강렬해 눈물이 났다.”
한미합작 연극 <로제타>에서 각각 로제타를 연기하는 8명의 배우. 미국 실험극단 리빙시어터 배우 3명과 극공작소 마방진 배우 5명이 함께한다. 엘로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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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옐로밤’ 연습실. 연극 ‘로제타’의 첫 장면이 시작되자 남녀 배우 8명이 강한 비트의 타악기 리듬에 맞춰 격렬한 춤을 췄다. 리빙시어터 소속 3명, 극공작소 마방진 소속 5명 등 배우 8명이 로제타를 동시에 연기한다. 리빙시어터 특유의 ‘앙상블 테크닉’을 도입한 스타일이다. 배우들이 둥그런 원을 이루며 함께 함성을 내지르는 장면도 리빙시어터가 60년대 작품에서 선보인 ‘코드 테크닉’과 흡사하다. 배우들의 집단적 앙상블을 강조한 리빙시어터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리빙시어터에서 50년 동안 활동해온 배우 토머스 워커는 “대사들이 배역을 넘어 물 흐르듯 이어지면서 오케스트라처럼 연출되는데, 어느 순간 관객들이 다 같이 춤추고 노래 부르게 된다”고 했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공연이지만 연극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장은 “연극 <로제타>는 자막이 필요 없는 국제 공동 창작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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