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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이슈 국악 한마당

확고한 정체성·명랑한 세계관…‘요즘 국악’ 다올소리 [고승희의 리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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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 발굴한 ‘21세기 민요’

K팝 스타 못지 않은 세계관 무장

쉽고 재밌게, 귀엽고 명랑하게

익숙한 장단으로 치유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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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는 확고한 색깔과 정체성을 가진 팀이다. 보컬(이해원 송현아 김송지), 타악 연주자(김윤만 김한샘), 작곡과 건반(박주화)을 맡은 여섯 명의멤버들이 모여 2015년 창단, 소위 ‘21세기 민요’를 들려주고 있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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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문 엽시오. 문 엽시오. 용 회장님 문 엽시오.”

예상치 못한 등장이다. 꽤나 시끌벅적하다. 푸른 바다 아래에서 해초처럼 나풀거리는 의상을 맞춰 입고 무대 뒤편에서 호기롭게 정체를 드러낸다. 만인의 시선을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 ‘슈퍼스타’다웠다.

자, 지금부터 다올소리 세계관으로의 입장. 경쾌하게 울리는 꾕과리와 북 소리에 맞춰 무대로 내려오는 다올소리는 ‘바다 해(海)’ 자를 써서 본격적인 ‘바다 파티(해파리·Seaparty)’를 시작했다. 돌고래가 뛰어놀고, 물거품이 은빛 풍선이 돼 유영하는 바닷속 공연장에서 열린 ‘초특급 VVIP’를 위한 다올소리의 비밀스런 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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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민요를 부르는 다올소리는 하는 일마다 모두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순우리말 ‘다올’과 ‘소리’를 결합한 신조어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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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의 정체성…‘21세기 민요’를 부르다다올소리는 확고한 색깔과 정체성을 가진 팀이다. 보컬(이해원 송현아 김송지), 타악 연주자(김윤만 김한샘), 작곡과 건반(박주화)을 맡은 여섯 명의멤버들이 모여 2015년 창단, 소위 ‘21세기 민요’를 들려주겠다며 8년간 바다부터 육지까지 오가는 ‘파티’를 열고 있다. 그룹의 이름부터 노래까지 찬찬히 뜯어보면 다올소리는 소름끼치는 ‘일관성’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룹의 이름은 이들의 손에서 태어난 ‘신상 합성어’다. ‘하는 일마다 모두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순우리말 ‘다올’과 ‘소리’를 결합한 신조어. 팀의 이름을 통해 ‘우리의 음악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복이 오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담았다. 스스로의 이름을 지으며 축원(祝願)의 의미까지 새긴 것은 만천하를 향한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엔 위로와 치유,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겠다는 강력한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다올소리 음악의 큰 뿌리는 민요다. 이 팀은 여러 지역의 민요를 발굴해 ‘요즘 스타일’로 부른다. 스스로는 “각 지역의 보석 같은 우리 음악을 발굴해 현대적으로 채색한 음악”이라고 말한다. 음악의 강점은 쉽고 익숙하다는 데에 있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장단 위에 자신들의 음악을 쌓아올린다. 전국에 숨은 민요와 무가를 재해석한 결과물은 상당히 재기발랄하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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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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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다올소리…K팝 그룹 못잖은 세계관다올소리는 조금은 독특한 ‘새로운 세대’의 국악인이다.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하나, 대중성이 강하다. 절반쯤은 인디 밴드 같고, 절반쯤은 K팝 그룹 같은 면모를 안고 있다.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구축한 세계관을 끌고 가는 힘은 여느 K팝 그룹 못잖게 뻔뻔하다. 가내수공업을 하듯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다져와 무대 위로 올려놓은 것은 다수의 인디밴드와 같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열린 ‘다올소리와 해파리 SeaParty’(12월 23~24일·서울남산국악당)는 현재의 다올소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공연이다. 이틀 간의 공연이 다올소리가 간직한 백 가지 모습을 모조리 담아낸 공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날의 공연은 다올소리를 처음 만나는 관객에게도 그룹의 색깔을 명확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다올소리와 해파리 SeaParty’에 입장하기 위해선 약간의 최면이 필요하다. 이들이 이끄는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올소리의 공연은 음악, 안무, 노래 제목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세계관’ 위에 직조됐다. 퍼즐이 맞춰지듯 어느 하나 모나거나 이지러짐 없이 어우러진다. 그 과정에서 다올소리의 정체성을 강하게 뿌려놨다.

공연의 세계관은 상당히 귀엽다. 용 회장(용왕)이 주관하는 파티에서 다올소리는 ‘바다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슈퍼스타’이고, 관객은 VVIP 손님이다. “관객은 항상 소중한 존재”인 만큼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바다 파티의 VVIP 육지 손님”으로 정했다는 것이 다올소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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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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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민요’를 부르기 위한 숨은 장치들바다 파티인 만큼, 공연에선 ‘바다’를 주제로 만든 ‘오늘의 민요’를 들려줬다. ‘바다 길놀이!’로 시작해 ‘다올소리와 해파리 SeaParty’에 초대된 VVIP를 맞는 ‘손님맞이 노래’인 ‘안다다씨’가 흥을 끌어올린다. ‘안녕’을 기원하듯 평안한 인사를 건네며 시작하는 이 곡은 VVIP 환영가다. “김해 김씨, 전주 이씨, 밀양 박씨… 그중에 제일가는 바다 안씨 안-다다씨!”라니, 바다 파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인 곡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다올소리는 그룹의 이름처럼 노래 제목 역시 ‘언어 유희’를 바탕에 두고 창조했다는 점이다. 디즈니 명작 ‘인어공주’ 세대라면 단번에 떠올릴 OST ‘언더 더 씨(Under the sea)’를 연상케 하면서도 호기롭게 ‘바다 안씨’라며 한국식으로 치환해 버리고, 영어와 한글을 적절히 섞거나, 세상에 없던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작명 센스’를 끊임없이 발휘한다.

‘안다다씨’는 이 공연에서 등장할 다올소리 음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에피타이저였다. 다올소리는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민요와 무슨 말인지 몰라 난해한 무가를 ‘요즘 방식’으로 가져온다.

‘안다다씨’에 이어 등장한 ‘쏭쏭해주’는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에서 김윤수 심방이 군웅덕담 제차에 사용한 사설과 무가를 차용해 만든 곡이다. 제목은 ‘노래해줘’라는 의미를 담았다. 다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인 만큼 멜로디는 심플하고, 장단은 익숙하다. 다올소리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처음 듣는 곡이지만, 듣다 보면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부를 수 있는 곡이다. ‘쏭쏭해주’의 ‘킬링 포인트’는 1절 이후 믹스팝처럼 전환된 악구다. 관객들의 떼창을 유도하는 “라 라 라 라” 밑으로 깔린 장단은 ‘내적 댄스’를 불러온다. 특히 이 악구는 이후 등장할 멜로디의 복선이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구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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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는 보컬(이해원 송현아 김송지), 타악 연주자(김윤만 김한샘), 작곡과 건반(박주화)을 맡은 여섯 명의멤버들이 모여 2015년 창단했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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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의 공연은 음악이 중심이지만, 마당놀이 같은 모습도 하고 있다. 세계관의 유지를 위해 불러도 대답없는 ‘용 회장’을 소환하고, ‘고등어’라는 이름의 관객 사연을 읽어주는 등 다양한 요소를 넣었다. 공연은 대체로 흥겨움의 연속이나, 딱 한 번 잔잔해지는 무대도 있다. 자칭 ‘심해 감성 발라드’라고 부르는 ‘라라라’ 무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이 길을 오늘도 나는 가네”라는 노랫말처럼 어두운 터널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곡이다. 다올소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방향성을 담고 있다. 힘을 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세 보컬의 음색은 파동 없는 깊은 바닷속에서 들려온 메아리처럼 귓가에 닿는다.

다올소리의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또 하나의 무대는 ‘수이쳐’였다. 파도가 치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의성어인 ‘수이쳐’를 제목으로 삼은 곡이다. 선글래스를 끼고 속사포 랩을 하듯 장단 위에 몸을 실은 다올소리는 파도가 철썩이며 수이치는 모습을 음악 안에 담아내며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나쁜 일을 쫓아내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기반의 ‘허쒜허쒜’, 사랑스러운 건반으로 시작해 다함께 춤추고 놀자는 ‘해파리’까지 이어지며 다올소리의 파티는 절정을 향한다. 대미를 장식한 곡은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중 ‘놀이굿’인 ‘영감놀이’의 일부를 차용한 ‘영감아 영감아’였다. “힘들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좋은 일만 가득한 새해를 맞이하길 바란다”는 다올소리의 응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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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는 ‘위로와 치유’를 담은 ‘요즘 민요’를 부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가져온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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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올소리는 ‘위로와 치유’를 담은 ‘요즘 민요’를 부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가져왔다. 아기자기하게 스토리텔링한 세계관, 그 세계관을 온전히 구현한 음악, 그 음악의 얼굴이 되는 노래 제목 등 ‘오늘의 민요’를 들려주기 위한 장치로 새로운 음악의 길을 열었다. 곳곳에 툭툭 던진 장치들은 과거의 민요가 낯설었던 관객의 손을 잡고 이끈다. ‘새로운 전통’을 기치로 어렵게 꾸며낸 음악이 아닌 쉽고 발랄한 음악으로 전통음악에 대한 장벽을 과감하게 낮춘다. 공연은 유달리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다올소리의 무대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민요의 힘, 그 위로 얹어진 ‘21세기 감성’이 빛을 발한 무대였다. 다만 다올소리의 정체성과 방향성의 밑바탕이 돼야할 음악의 정교함은 아쉽다. 음악은 흥겹지만, ‘고음 열전’을 방불케 하는 악기와 보컬의 충돌은 시끄럽게 느껴진다. 보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연주와 소리, 단조로운 구성을 뛰어넘을 새로운 음악적 시도 역시 필요해 보인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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