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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기고] '모다모다' 안전 검증 미루는 새 …'시장표준' 인정 못받고 '미투 제품'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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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노벨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 교수는 1973년 1월 뉴스위크지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폐지해야 한다는 기고문을 실었다. 요지는 FDA가 불안전하고 효능이 없는 약품의 판매를 사전에 방지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보다 오히려 귀중한 약품의 생산과 판매를 막고 지연시킴으로써 사회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FDA의 실패는 '사람이 아닌 조직'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지난해 12월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잠재적 유전독성'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을 화장품 원료 사용금지 목록에 추가하는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고시함에 따라 혁신 기술을 바탕으로 탄생한 모다모다의 '갈변샴푸'가 규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갈변샴푸는 지난해 8월 국내 출시된 이래 미국에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해 340만여 개 제품을 판매했고 세계 최대 뷰티 시상식 중 하나인 '코스모프로프 노스아메리카 어워드'에서 헤어 분야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K뷰티'를 미국 소비자에 각인시킨 바 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인지 지난 4월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는 식약처와 모다모다 양측에 협업을 기반으로 정밀한 위해(危害) 검증 절차를 거쳐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주무관청인 식약처는 THB의 위해성 평가를 소비자단체에 일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11개 소비자단체로 구성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위해검증위원회' 11인을 선정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안전성 검증은 '과학의 영역'이기에 식약처의 이러한 행태는 이해불가인 측면이 있다. THB 같은 전문 화학원료에 대한 검증과 그 원료를 사용한 제품의 검증을 비(非)과학단체가 주도하도록 한 것은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다. '경제와 과학'의 문제를 정치로 풀 수는 없다.

원점에서 문제를 짚어보자. 식약처가 THB 사용금지의 근거로 삼은 '유럽 SCCS 논문'조차 최종 결론은 "박테리아 단계에서의 '잠재적인 유전독성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럽 외 대부분의 국가에서 THB의 사용이 허용되고 있다. 하물며 유럽에서는 특정 물질을 전면 금지하기 전에, 해당 물질이 현재 소비자에게 어떤 편익을 제공하고 있는지, 또 금지했을 때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인지 등 다양한 변수를 복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논의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THB의 위해성 시비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갈변샴푸 이후 소위 '염색샴푸'로 불리는 제품은 35종으로 늘어났다. 식약처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대기업, 중소기업, 제약기업들이 앞다퉈 '미투(Me too)제품(유사제품)'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미투제품 생산을 위해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그만큼 제품들의 안전성 관리는 소홀해졌다.

문제 해결의 단초는 분명하다. 위해성 검증 결과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성학자, 생화학자' 등 과학자 집단이 제3의 플랫폼을 만들어 검증을 주도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소비자단체 주관으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검증위원 구성 단계에서 최대한의 공정성과 객관성, 전문성과 공신력을 갖춘 인적 구성을 해야 할 것이다. 위해성 판단의 기준은 THB가 두피 및 피부에 흡수되는지 여부임을 분명히 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규제가 현실을 앞설 수 없기에 규제는 '사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규제 이전에 시장에서 소비자에게 인정받은 제품은 '시장 표준'으로 그 지위가 인정돼야 한다. 혹여 혁신이 업계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절된다면 혁신경쟁은 왜곡될 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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