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경기 도중 하이신이 중국 1위, 세계 2위라고 적혀 있는 광고 문구. / 사진 = 웨이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이신이 중국 1등이라고요? 세계 2등? 언제 그렇게 성장했죠?"
2022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경기를 시청하던 중국인들은 경기장에 걸린 광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국의 가전 기업이자 월드컵 후원사인 하이신(하이센스)이 건 이 광고에는 "하이신이 중국 1위·세계 2위"라는 내용이 담겼다. 하이신은 삼성·LG 등 한국 기업은커녕 TCL이나 메이디 등 자국 기업에게도 뒤처졌다. 중국에서도 "광고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이 문구는 슬그머니 삭제됐다.
가전 시장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중국 기업들의 '갈고리 마케팅'이 국내 기업들을 노리고 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방역 정책으로 내수 시장이 축소되고,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량이 급감한데다 서방과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절박해진 탓이다. 기술이나 매출, 출하량에서 격차가 벌어져 있지만 월드컵 등 국제 행사를 기회로 국내 기업들과 대등한 자리에 서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중국 정부의 묵인 하에 한국을 노리는 '갈고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중국서도 밀리는 하이신, 세계 2위 자처하는 까닭은…"한국 엮어 인지도 키우자"
━
/사진 = 이주희 인턴 디자인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하이신은 중저가 TV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가전 회사로, 가전 시장 점유율은 낮지만 TV 부문은 압도적인 물량 공세를 바탕으로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 오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하이신의 세계 TV 시장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10.1%, 매출 기준 8.6%로 4위다. 하이신은 지난달 초 ASEAN 본사를 설립하고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이신의 '중국 1위·세계 2위' 자신감은 탄탄한 내수 TV 수요가 뒷받침됐다. 하이신 측은 해당 문구를 자신들의 TV 부문에 관련된 것이라고 알렸는데, 중국 조사기관 아오웨이루이오(AVC레보)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하이신의 글로벌 TV 출하량은 자회사인 도시바를 포함해 삼성 다음인 2위다. 중국 국내 시장으로 한정해 보면 출하량 기준 23.31%, 매출 기준 25.19%로 1위다.
그러나 아오웨이루이오가 현지 매체에 편향된 통계를 잇따라 내놓는다는 점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조사 결과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하이신이 '세계 2위'라고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온다.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하이신의 세계 TV 시장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10.1%, 매출 기준 8.6%로 4위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0.2%, LG전자는 17%로 각각 1~2위(매출 기준)를 독차지하고 있다. 같은 중국 기업인 TCL에게도 뒤처진다.
하지만 현지 업계에 따르면 중국 TV업계의 내부 사정은 긍정적이지 않다. 징동팡(BOE)·화싱꽝디엔(CSOT)등 자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재고가 늘고, '제로코로나'로 인한 주요 도시 봉쇄로 자국 수요가 침체되면서 다시 구매력이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진 탓이다. 조사기관 아오웨이윈왕은 올해 상반기 중국 컬러TV 소매량을 1672만대, 531억 위안(한화 약 10조원)으로 분석했는데 전년 대비 각각 6.2%, 10.5% 줄어든 수치다.
하이신의 올해 상반기 매출도 202억 위안(약 3조 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5% 감소했으며, 주력 사업인 스마트 디스플레이 사업 매출도 158억 위안(약 3조원)으로 지난해보다 12억 위안 가까이 급감했다. 순이익이 전년보다 50% 이상 오르기는 했으나 5억 9400만 위안(약 1130억원)에 불과한데다 지난해 실적 악화로 반등한 탓이 크다. 하이신은 지난달 솽스이(광군제)에서 가전 매출 8위를 기록했는데, 지난해(6위)보다 성과가 부진했다.
하이신이 월드컵에 공을 들이는 것도 '반전 계기'가 필요한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고급' '국가급' 등의 문구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중국 광고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던진 것도 부진한 실적을 개선해 보려는 시도라는 의미다. 중국 정부의 지원도 등에 업었다. 하이신 그룹 지주회사를 이끄는 쨔샤오췬 회장은 중국공산당 위원회 서기와 산둥성 당 대표를 역임한 공산당 주요 인사다.
현지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인들의 '월드컵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라며 "하이신과 같이 상대적으로 시장점유율이 낮은 기업은 중국인 수억 명이 시청하는 월드컵을 활용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지속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국가가 나서서 살포하는 가짜뉴스, 한국 기업은 속수무책
━
당분간 이같은 중국 기업의 갈고리가 한국 기업을 노리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수 시장 침체가 계속되고, 한국 기업들이 과점하고 있던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들이 늘면서 경쟁 구도를 형성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계산이다. 월드컵에서 '세계 2위'라는 광고 문고를 내건 것도 결국 세계 TV 1,2위 삼성, LG와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서 있다는 인식을 심으려는 의도가 담긴 게 아니냔 해석도 있다. 짜샤오췬 회장은 "중국 기업은 세계가 '중국 브랜드'를 갖게 만든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라며 "프리미엄 제품으로 유럽과 미국, 일본 시장을 돌파할 것"이라는 도전장을 냈다.
중국 정부는 삼성·LG를 롤모델로 삼고 기업에 점점 더 많은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국가 주도 하에 인재를 확보하고 기술력 경쟁에 뛰어들어 미국·일본 기업들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다. 하이신 관계자는 "삼성과 LG도 국가적 차원의 투자를 통해 글로벌 기업들을 꺾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라며 "중국 기업이 세계 2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일 기업이 아닌 국가가 나서서 경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종훈 전경련 아태협력팀 차장은 "중국 기업은 공영·민간 기업을 가리지 않고 당 간부나 당원들이 포진해 있을 정도로 정부와 관계가 깊고, 자국에 유리한 소식이라면 가짜뉴스를 조장하는 경향이 짙다"라며 "한국을 뛰어넘는 것이 공공연한 목표가 되어 있다 보니 앞으로도 이같은 '가짜 마케팅'이 지속될 것이지만, 국가가 방치하고 있어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