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서울경찰청 소속 한강경찰대에서 근무한다. 3조2교대로 대기하면서 한강에서 투신·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출동한다. 서울의 동쪽 끝인 미사대교부터 서쪽 끝인 행주대교까지 관할한다. 투신 구조 요청은 1년에 70여 건으로 닷새에 한 번꼴이다. 변사 사건은 180여 건에 달해 이틀에 한 번꼴로 출동한다.
그가 수습해야 하는 시신은 처참하게 훼손된 경우가 많다. 모텔 살해사건 범인 장대호가 토막 내 유기한 시신도 강바닥 이곳저곳을 살펴 신체 부위를 찾아내야 했다.
한번 물에 들어가면 30~40분은 수색해야 나올 수 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물속에서 20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체온 유지를 위해 방한용 잠수복을 입는다고 하지만 손발이 얼어 수색을 마치고 구조선 선체를 붙잡고 올라오는 것도 벅차다.
그런데도 A는 이곳에 오기 전 기동대에서 근무할 때와 달리 마음만은 편하다고 했다. 기동대는 집회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그 경찰을 말한다. 이른바 '전문 시위꾼' 들이 등장하는 시위에 투입될 때마다 모멸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정권의 개XX들" "X새"라고 욕설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술 취한 사람처럼 경찰을 향해 침을 뱉고 헬멧을 지능적으로 치면서 과잉대응을 유도한다. A는 결국 몸은 힘들지만 스트레스는 덜한 한강경찰대를 자원했다.
집회의 자유는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이지만 법률에 따라 질서유지를 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경찰은 그런 공적인 임무를 부여받아 수행하는 이들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마음껏 목소리를 지를 수 있지만 질서유지를 위해 투입되는 경찰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취급될 뿐이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은 그런 상황을 악용한다. 경찰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 9일 민주노총 등이 주도한 서울 도심 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사전 신고 범위를 벗어나 전체 도로를 점유했고, 이를 저지한 경찰들은 대거 부상을 입었다. 발목 인대가 파열돼 6주간 치료받아야 하는 이도 있었다. 2020년 기준으로 우울증을 호소한 경찰관은 2020년 1123명이고 자살한 경찰관만 24명이다. 경찰관 개개인도 상처받을 줄 아는 인간임을 보여주는 통계다.
경찰뿐 아니라 집회가 주로 이뤄지는 도심 지역에서 근무하는 직장인과 큰돈을 들여 서울 구경을 온 내외국인 관광객도 피해자다. 광화문광장 인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기자는 시간이 갈수록 집회 스피커의 성능이 좋아짐을 느낀다. 대북 확성기 소리와 흡사하다. 귀를 찢는 소리를 듣다 보면 귀순하라는 설득을 당하는 전연지대 인민군 취급을 당하는 것 같다. 집회에 대한 공감도는 그들이 차지하는 차로 개수와 스피커 볼륨 크기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겪어보면 안다.
거의 매주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일대는 공시지가만 평당 2억원을 넘나드는 금싸라기 땅이다. 공공의 소유인 광장과 도로를 특정 집단이 귀한 시간대에 공짜로 점유하는 것 자체로 일반 시민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집회는 민주국가에서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남을 배려하지 않는 집회는 지지자와 내부자들의 결속을 다지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지난해 9월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된 교사들 집회는 목적을 십분 달성한 집회였다. 당시 3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였음에도 조그만 충돌도 없었고 떠난 자리는 휴지 한 장 없었다. 남을 배려하는 집회 사진을 접한 이들은 교권 회복을 염원하게 됐다.
이처럼 집회의 호소력은 명분과 인원도 중요하지만 참가자들의 질서와 배려가 큰 역할을 한다. '호소력=명분+참여인원(질서+배려)'라는 공식으로 단순화할 수 있다. 무질서와 갑질만 난무한 집회는 참여인원이 많을수록 불쾌감만 심어주게 된다. 불쾌감의 크기가 명분을 뛰어넘을 경우 호소력이 마이너스가 돼 집회를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고, 질서를 파괴하는 정도가 심하면 폭동이 된다.
지난해 9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고 교권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교사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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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사회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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