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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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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히잡 시위’ 참가자 또 공개처형…EU는 속전속결 대이란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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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란 ‘히잡 시위’ 지지자들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이란의 시위 참가자 공개처형에 반대하는 의미로 교수형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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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사법부가 반정부 ‘히잡 시위’ 진압 보안군에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시위 참가자 마지드레자 라흐나바드(23)를 12일(현지시간) 공개 처형했다. 앞서 같은 혐의로 시위 참가자 모센 셰카리(23)가 공개처형을 당한 지 4일 만에 사형을 또다시 집행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시민들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이란 정부가 공포정치로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대이란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에 이란도 유럽국 인사들에 대한 추가 제재를 내놓는 등 이란과 서방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란 사법부 운영매체인 미잔통신은 이날 오전 북동부 도시 마슈하드에서 라흐나바드에 대한 교수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에는 라흐나바드가 손이 뒤로 묶인 채 교수형을 당해 크레인에 매달려 있고,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든 모습이 담긴 영상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라흐나바드는 지난달 17일 시위 진압을 책임지고 있는 바시즈 민병대원 2명을 칼로 찔러 치명상을 입힌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AP통신은 보안군이 시위대를 살해한 것에 분노해 라흐나바드가 보안군에 흉기를 휘둘렀다고 전했다.

이날 사형 집행은 앞서 셰카리의 사례처럼 공개 처형으로 이뤄졌다. 유죄 판결을 받은 지 약 한 달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인권운동가들은 최소 12명이 히잡 시위 참여 관련 혐의로 밀실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았다면서 추가 사형 집행을 경고했다. 이란의 신속한 공개 처형은 공포심을 조성하고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란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간 뒤 숨진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을 계기로 지난 9월부터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라흐나바드에 대한 공개처형 이후 호라산 지역 사법부 대표는 직접 경찰과 사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 표시를 했다. 사법부 대변인은 국영방송에 출연해 보안요원을 해할 목적으로 무기를 쓰는 자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신에 대한 적대죄(모하레베)’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잔통신은 사형 집행 전 손발이 묶인 채 검은 자루를 쓰고 있는 라흐나바드의 모습을 수차례 방송했다.

기중기까지 동원한 공개 처형 방식도 공포심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앞서 2009년 대선 직후 부정선거 의혹 때문에 일어난 녹색운동 당시 소요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기중기를 동원한 교수형이 집행된 바 있다. 인권운동가들은 이란에 크레인을 제공하는 기업들에 정부의 사형집행에 사용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납품 중단을 압박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이란이 보란 듯 신속하게 공개 처형을 강행하자 유럽연합(EU)도 속전속결로 추가 체재 방침을 발표했다. EU 외교장관 이사회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 본부에서 회의를 열고 이란 성직자 등 24명과 관련 기관 5곳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정했다. 이 중 20명과 기관 1곳은 반정부 시위 탄압 등 인권침해와 연관됐다. 제재 명단에는 이란 국영방송 IRIB와 대표 페이만 제벨리도 이름을 올렸다.

제재 발표 전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이란의 시위 대응 및 최근 공개처형에 대해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했으며 “쉬운 대화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우, 매우 강력한 제재안을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도 이번 처형을 두고 이란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협박 시도라고 꼬집었다. 그는 “우리는 무고한 이란인들 편에 설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면서 “이런 방식으로 국민을 대하는 정부는 EU와 정상적인 관계를 지속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서 이란을 추방하기 위한 투표도 13일 치러진다. 유엔 감시 시민단체인 유엔워치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란 퇴출이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 외교부도 이날 유럽의 언론사, 전·현직 정치인, 군인 등 9개 기관 23명을 추가로 제재한다고 밝혔다. 언론사 중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페르시아어 방송 라디오 자마네, 프랑스 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 자유 유럽 라디오 이란 지부인 라디오 파르다가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에서는 전 외교장관이자 국경없는의사회 설립자인 베르나르 쿠슈네르, 영국에서는 인권 연구소 의장인 제프리 빈드먼을 비롯해 몇몇 현역 의원들이 제재 명단에 포함됐다.

일부 제재는 2020년 1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군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드론 암살당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란은 솔레이마니 암살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맨위드 힐 공군기지와 영국군 및 정보당국 관계자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라크 주둔 독일군 사령관을 비롯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독일 국방장관을 지낸 안네그레프 크람프-카렌바우어도 제재 인사에 포함됐다. 이란은 지난해 솔레이마니 암살 1주기를 맞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처음 제재 대상에 올린 이후 유럽국 관료들로 제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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