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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 주워와 방에 쌓고 가게 물건 훔치는 엄마, 어찌해야 할까요 [정우열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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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정우열의 회복’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우열 원장이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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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엄마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저장 강박과 병적 도벽이라는 병입니다. 과거 수년 동안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아빠와 저희 세 남매도 엄마의 병에 대해 익숙해지긴 했지만 막상 엄마의 문제 행동을 마주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엄마는 평생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살면서 마음의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집이 가난해서 동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타지에서 돈을 벌었습니다. 저와 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토로하시는 걸 자주 들었어요.

결혼해서도 가부장적인 남편 슬하에서 세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아빠는 부엌에는 들어가 보신 적도 없으며, 평소에 말씀도 많이 안 하십니다. 집안 대소사는 아빠가 결정하시고, 엄마는 그 때문에 속앓이를 하셨죠. 평생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인정받기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모두 엄마를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 남매는 과거엔 엄마의 아픔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엄마의 헌신 덕분에 부러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죠. 생활도 넉넉했고, 가족여행도 자주 갔어요. 엄마는 자식이 전부인,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셨고, 지금도 엄마는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이 저희를 낳고 키울 때라고 하십니다.

저희가 성인이 돼 분가를 하고, 아빠의 해외 근무로 엄마가 잠시 혼자 살던 시절이 있었어요. 가끔 집에 가면 평소 보이지 않던 짐들이 방에 점점 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방 세 개가 천장까지 가득 찰 정도로 잡동사니가 쌓였습니다. 누울 공간을 제외하고는 집이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되자, 엄마는 "아빠가 돌아오면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때 엄마의 병에 대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사실 엄마는 과거에도 길에서 뭔가를 보시면 줍고, 의류 수거함에서 옷을 자주 가져왔지만 저는 그저 '어린 시절 힘들게 사셔서 그런가 보다'라고 넘어갔어요.

짐들의 대부분은 옷, 신발, 여행가방 등 의류수거함에서 주워 온 것들이었어요. 심지어 누가 버린 화장지, 누가 썼던 기저귀까지 있었어요. 도저히 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탓에 엄마의 만류에도 아빠에게 사실대로 말씀드렸고, 업체를 불러 트럭으로 네 번을 옮기고서야 정리가 됐습니다.

이사를 하고, 아빠와 살게 되면서 엄마의 병도 차도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4년여가 지난 어느 날, 급하게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들어 보니 엄마가 화장품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고, 경찰서에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과거에도 여러 번 비슷한 일로 경찰서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습니다. 병적 도벽이었죠.

처음에는 엄마가 아빠에게 알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해 남매들만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빠에게 말했고 집안 분위기는 점점 살벌해졌습니다. 그래도 아빠가 매일 엄마 곁에 있으면서 도벽의 빈도수는 줄어갔습니다.

그러다 다시 일이 터졌어요. 엄마가 의류수거함에서 옷을 주워오는 걸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빠가 같이 수면제를 먹자고 하신거예요. 아빠는 이렇게 하면 엄마가 다시는 이상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다고 해요.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항상 긴장해야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아버지도 못 견딘 거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행동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몇 주 전에 다시 일이 생겼어요. 아빠와 마트에 가셨다가 채소를 슬쩍 가져오셨다고 해요. 일이 터지면 아빠는 슬픔과 절망에 빠져서 술을 드시고, 엄마에겐 화를 내십니다. 그리고 벌을 주기 위해 엄마의 옷을 버리는데 그러면 엄마의 불안과 불만은 더 깊어가요.

아빠의 답답한 처지도, 엄마의 힘든 마음도 이해가 돼 너무 속상합니다. 엄마는 일이 있고 난 후에는 당신이 죄인이라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않고 동굴 속으로 숨어버리는 엄마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맞나 싶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그저 아빠의 기분이 풀려 상황이 잠잠해지는 걸 기다릴 뿐입니다. 이런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이지민(가명·30·회사원)
한국일보

지민씨, 당신은 엄마의 아픔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아닌 이상 엄마의 어려움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어요. 엄마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서는 엄마의 삶을 돌아보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지민씨 어머니는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왔어요. 어린 시절은 여자라는 이유로 자기 욕망을 포기한 채로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고, 결혼해서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자신보다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위해 살아왔죠.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인정받고 싶었지만, 지민씨의 묘사대로라면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성장기에는 부모, 성인이 되서는 남편이라는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적절한 애착 경험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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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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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인간관계에서 경험한 심리적 결핍을 채운 것은 바로 엄마라는 역할이었죠. 아이를 낳고 정성껏 키우면서 깊은 행복과 만족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아이들이 훌쩍 자라 독립을 한 거예요. 삶의 동력이자 유일한 애착 대상이 사라진 것이죠.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육아를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안도감이나 성취감이 아니라 허망함이 찾아들었을 거예요. 흔히 말하는 '빈둥지증후군'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때마침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되면서 그 상실감과 충격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의 저장 강박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해요. 저장 장애는 소유물에 대해 과도하게 애착을 느끼고, 버리지 못하는 질환입니다. 내가 소유하는 물건에 대해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고, 버릴 때 불안과 죄책감이 동반되기에 저장함으로써 통제하려고 하죠. 많은 저장 강박의 경우 그 이면에는 관계 결핍 혹은 단절이 있어요. 자식들을 향한 애착과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했던 어머니는 지민씨 남매의 독립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느꼈을 겁니다.

병적 도벽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적 도벽은 물건이 목적인 도둑질과 다르게 훔치는 행동 자체가 목적인 일종의 ‘충동조절 장애’입니다. 물건을 훔치기 전 충동과 긴장, 훔친 후 쾌감과 이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이죠. 행동에 집착하면서 내면에 마주하기 힘든 부정적 감정을 피하려는 겁니다. 저장 장애와 마찬가지로 병적 도벽 역시 많은 경우가 소중한 인간관계 단절 및 상실 이후 증상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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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머니의 병을 계기로 가족 모두가 어느 때보다 어머니에게 관심을 쏟고, 배려하고 있는 시기예요. 어머니의 상실감이 일시적으로 해결되는 듯하지만 증상이 호전되다가도 다시 이상행동을 반복하고, 의지와 무관하게 문제 행동을 보일 때마다 어머니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지요. 옳고 그름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강박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집착한다는 것은 결국 마음속에 마주하기 싫은,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뜻이에요.

현재 어머니가 진행 중인 인지행동치료도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고통과 충동을 유발시키는 내면의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겁니다. 지금은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친절하게 대하기보다 어머니가 진솔한 자기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듬어드릴 때입니다. 질환으로 인해 지나치게 가족들을 의지하게 되면 오히려 자기 마음과는 멀어지게 되고, 증상이 더 지속되며, 가족들은 점점 지치기 쉽거든요.

무조건 잘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역할을, 가족들이 해야 해요. 내면 깊숙이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을 스스로 발견하고 천천히 표현할 수 있는 소통의 '밭'을 만들어드리는 것이죠. 행동 자체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아주 섬세하게 감정을 따라가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그동안 어머니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였고, 정체감이 없는 공허한 느낌이 얼마나 오랫동안 있었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가 유발됐는지를 본인의 입을 통해 꺼낼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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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민씨와 가족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가족 밖에서 편안하게 자기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찾아드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종교모임이나 취미활동 등을 통해 인적 교류를 할 수 있게 도와드리거나 심리상담센터나 의료기관을 찾아 꾸준히 일대일 상담 기회를 드리는 것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거예요.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것은, 어머니를 잘 보듬어드리는 것만큼 지민씨의 내면도 세심하게 살피라는 겁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감정과 행동의 무게 추가 타인에게 과도하게 치우치는 순간 고통은 그 사람이 아닌 나에게도 대물림될 수 있어요. 어머니의 닫힌 마음을 두드리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안위를 챙기며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는 지민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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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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