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809'(2022) 【사진 제공=페이스갤러리】 |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이 장관이다. 빛과 색채 표현에 탁월했던 영국의 국민 화가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도 떠올리게 한다. 다소 익숙한 풍경 사진에 바짝 다가가니 선과 타원 등 기하학 도식이 화면에 가득해 낯설어진다.
미국 작가 트레버 페글렌(48)의 작품 'CLOUD#489'는 바로 자율주행차의 시선으로 바라본 하늘이다. 보통 운행하는 도로에 투영해 방향이나 거리 등을 측정하는 선 등이 하늘에 덧그려진 듯하다.
페글렌의 개인전 'A Color Notation'이 서울 한남동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고전 명화의 한 장면을 재현한 듯한 사진을 찍고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인식하는 장면으로 재창조했다. 작품 제목이 분류체계처럼 딱딱하게 붙여진 이유가 이해된다. 전투기 조종간에서 파악하는 미사일 발사 경로 등 사물 추적 시스템에 적용되는 이미지와 통한다. 바다나 하늘 모두 통신 시스템이 지나는 경로라는 점에서 그저 자연 장관으로만 넘길 수는 없다. 또 다른 작품 'Bloom' 연작은 흑백 사진에 AI 시스템이 입힌 색깔을 자동으로 입힌 결과물이다. 몽환적 느낌이 강해져 현세가 아닌 듯싶다. 작가도 실제와 색깔 차이가 크다고 덧붙였다.
페글렌은 "우리가 보는 세상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세상에 무엇이 있을지 탐구해온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익숙한 풍경 속에 날카로운 주제의식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작가는 평소 곳곳에 깔린 CCTV를 통해 작동하는 얼굴인식 시스템과 AI, 기계학습 작동 체계에도 관심이 많다. 전작에서 미국의 군부 비밀시설 등을 촬영하거나 훈련을 통해 이미지를 인식하는 AI 시스템이 거짓 결론에 도달하는 실태를 끄집어낸 것을 고려하면 이번 전시도 달리 보인다.
작가는 일찌감치 예술가의 길을 택한 후 통신망 등 국가기간시설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지질학 박사까지 됐다. 2018년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함께 최초의 위성 예술작품 '궤도 반사경(Orbital Reflector)'을 쏘기도 했다. 우주 쓰레기나 우주의 공공성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작품이다.
작가는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하고 백남준미술상(2018년)을 수상한 인연으로 세 번째 방한했다. 1950년대 초기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로 구현한 작품도 내년 봄께 선보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전시는 24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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