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화물연대 파업 일주일째인 30일 광주 광산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앞에 운행을 멈춘 화물차들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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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파업)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주도하는 '정권퇴진' 운동의 한줄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철도노조 파업도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파업이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정부는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요구한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및 영구시행 ▶철강, 자동차, 사료 등 품목 확대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29일 시멘트 분야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게다가 명칭은 안전운임인데 시행 이후 오히려 화물차 사고와 사망자 수가 각각 8%와 42.9% 증가한 것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시행 전인 2019년과 시행 2년째인 2021년을 비교한 수치다.
안전운임제는 과로ㆍ과속 등을 막기 위해 화물 차주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그보다 적은 돈을 지불하는 화주에겐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로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됐다. 3년 한시로 2020년부터 적용됐으며 올해 말 종료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안전운임 확대를 결사반대하는 현실적인 이유 두 가지가 더 있다. 첫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정부 차원에서 화물운임을 강제하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30일 광주 광산구의 한 레미콘 업체에서 생산 차질로 인해 레미콘 차량이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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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따르면 표준운임제를 운용하는 일본은 지역별 물가와 임금 수준을 고려해 운수심의회 자문을 거쳐 국토교통성이 표준운임을 고시한다.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성은 없다.
프랑스도 시장에서 운임 결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차종별 평균 영업조건을 기준으로 참고원가를 산출해 고시하지만 역시 강제적이지는 않다.
캐나다의 경우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 밴쿠버항 출입 컨테이너에 한해 지역 간 운임을 고시하고, 위반 때 운수사업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화주가 운송사에 지급하는 운임은 규제하지 않는다.
호주는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화물차 운전자의 최저운임제를 운용 중이다. 그러나 화주와 운수회사 간의 관계는 규율하지 않고, 운송회사가 개인 화물차 운전자에게 지급해야 할 최저운임만 규정하고 있다.
앞서 호주는 2016년 4월 7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우리나라와 유사한 도로안전운임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하다 화주단체 등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폐지한 바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익대표와 화주·운수사·차주대표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에서 운임을 결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위반 횟수와 금액에 상관없이 화주에게 건당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도록 돼 있다.
시멘트업계에 대한 업무개시 명령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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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강제성을 띄는 데다 운송사업자가 아닌 화주를 처벌하는 규정도 유례가 없는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안전운임으로 인한 물류비 부담 증가에다 처벌까지 겹치면서 화주단체의 반발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시멘트협회, 한국석유화학협회, 대한석유협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철강협회 등 주요 화주단체들은 안전운임제의 즉각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안전운임제 확대에 난색인 또 한가지 이유는 안전운임이 화물연대의 세력 확장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판단 때문이다. 컨테이너와 시멘트 분야에 안전운임이 도입된 이후 수입 증가와 운행시간 단축 효과가 확인되면서 다른 화물 차주들의 관심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화물연대에서 다른 분야의 화물 차주들에게 안전운임 적용대상에 포함시켜주겠다며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하고, 집단운송거부에도 참여시키는 정황이 포착된다"고 말했다.
시멘트 분야의 경우 안전운임 이전에는 조합원이 500명대에 머물렀으나 시행 이후 2500명까지 불어났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선 안전운임 확대가 곧바로 화물연대의 세력 확장으로 이어지는 걸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화물연대 측은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시멘트 품목 과적 경험이 30%에서 10%로 줄고,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 비율도 크게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노동위험 지수가 낮아지고 있어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정치적 이유 외에도 현실적인 사유와 주장들이 겹치면서 정부와 화물연대 간의 '강 대 강' 대립은 쉽사리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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