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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LNG선 또 계약 해지 … 조선업계, 러시아 리스크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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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조선업계는 국제 금융결제망에서 러시아가 퇴출당한 여파로 잔금을 받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취소하고 있고, 자동차업계는 러시아 현지에 원자재 공급이 중단된 여파로 수개월째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조선업계는 계약을 취소한 물량 중 이미 공정이 진행된 선박을 새 주인에게 재판매해 손해를 최소화하고 있고, 자동차업계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가동 재개 시점을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25일 러시아 해운사인 소브콤플로트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1척의 공급계약을 해지했다. 이는 대우조선해양이 2020년 수주한 물량이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소브콤플로트로부터 쇄빙LNG선 3척을 모두 8억5000만달러에 수주했는데, 앞서 2척은 지난 5월과 6월 각각 계약을 해지했다. 이번 계약 해지로 마지막 남아 있던 물량까지 모두 해지하게 됐다.

계속된 계약 해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가해진 제재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되면서 잔금을 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소브콤플로트는 러시아 국영선사인 탓에 서방의 제재 대상 기업 명단에도 올라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선주사 자금 사정에 어려움이 있을 경우 서로 합의하에 조정할 여지가 있지만, 이번 건은 잔금을 받을 여지가 원천 봉쇄돼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며 "관련 선박을 필요로 하는 새 선주사를 물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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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현대삼호중공업도 소브콤플로트로부터 5억5000만달러에 수주했던 LNG선 3척의 계약을 지난 7월 모두 해지한 뒤 관련 선박들을 새 선주사 측에 모두 재판매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이 속한 현대중공업그룹은 "소브콤플로트 물량 계약 해지로 남아 있는 러시아 수주 잔고는 없다"며 "일단 러시아 리스크에선 자유로운 상황"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국내 조선업계의 대러시아 수주 잔고는 약 60억달러(약 8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회사별로 살펴보면 삼성중공업 잔고가 51억달러로 가장 많고, 대우조선해양이 7억7000만달러로 뒤를 잇는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가 추진하는 대규모 LNG 개발 사업인 'Arctic(아틱·북극) LNG-2' 프로젝트에 참여해 선박 블록과 기자재를 공급할 예정이었다. 아틱 LNG-2는 러시아 시베리아 기단(Gydan) 반도에 있는 가스전의 이름으로, 러시아가 2025년까지 연간 1980만t의 LNG를 생산하기 위해 개발 중인 초대형 가스전 프로젝트다. 대우조선해양이 계약을 해지한 LNG선 3척도 모두 이 프로젝트에서 발주한 물량이다. 삼성중공업은 계약 해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수주 규모가 큰 데다 아틱 LNG-2가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노바텍, 국영 조선사 즈베즈다, 국영 해운사 소브콤플로트 등이 모두 참여한 프로젝트라 계약 해지를 할 경우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관련 수주 잔량 20척 중 3척만 공정을 진행 중이고, 나머지는 건조에 착수하지 않고 있다. 3척 관련 계약액은 8억6000만달러인데, 이 중 5억달러만 지급받은 상태다. 하지만 아직 설계 단계인 나머지 17척과 관련해 이미 지급받은 선수금 규모가 공정에 돌입한 선박의 잔금 액수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채권을 회수하지 못해도 손실은 크지 않을 수 있단 의미다. 계약을 해지한 대우조선해양도 고심이 크긴 마찬가지다. 이 회사가 러시아로부터 수주한 LNG선은 쇄빙선인 탓에 수요처가 일반 LNG선에 비해 많지 않아 새 주인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이후인 지난 3월부터 러시아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지난해 1~10월 현대차 러시아 공장에선 현지 내수용 17만4251대, 수출용 2만1960대 등 총 19만6211대를 생산해 판매했다. 올해 1~10월은 현지 내수용 3만7036대, 수출용 6598대 등 총 4만363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7.8% 줄었다.

러시아 시장을 놓고 현대차그룹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총 37만여 대를 판매해 러시아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다. 르노,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잇달아 러시아 사업 철수를 결정하자 러시아 현지 매체는 현대차그룹의 철수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러시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오수현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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