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원인을 수사하고 있는 특수본은 핼러윈 주말에 이태원에 인파 사고 가능성이 있다는 용산경찰서 보고서가 참사 이후에 삭제된 정황을 파악하고 담당 과장과 계장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입건했습니다. 저희가 보고서 작성 이후 보고 과정, 그리고 보고서가 삭제된 상세한 정황을 취재했습니다. 보고서 작성자는 참사 사흘 전 보고 과정에서 정보경찰관 배치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담당 과장은 "대통령실 앞 집회에 집중하라"며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성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참사 발생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용산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관 A 씨가 작성한 '이태원 핼러윈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이라는 제목의 문서입니다.
지난해 축제에 약 10만 명이 이태원을 방문했는데, 올해는 방역 수칙 해제 후 첫 핼러윈이라 많은 인파가 운집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SBS가 용산경찰서 직원들을 취재한 결과 A 씨는 오전에 이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상급자인 정보과장에게 "인파 상황을 살피고 경찰서에 보고할 정보경찰관을 현장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정보과장은 "당일 저녁 대통령실 인근까지 행진하는 대규모 집회 상황에 집중하라"면서 A 씨의 보고를 묵살했습니다.
자신이라도 직접 이태원 현장에 나가보겠다는 A 씨 의견도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A 씨는 직속상관인 정보계장에게도 다시 의견을 전달했지만, 조치는 없었습니다.
A 씨는 이후 저녁 8시 반쯤 작성한 보고서를 서울경찰청 첩보관리시스템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보고는 이 시스템 설정에 따라 72시간 뒤 자동 삭제됐습니다.
삭제 시점은 참사 당일인 29일 저녁 8시 30분이었습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참고인 신분으로 A 씨를 불러 이 같은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특수본은 A 씨 보고 내용이 용산서장은 물론이고, 치안 대책을 세운 112 상황실이나 기동대 배치를 하는 경비과에도 전파되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결국 이태원 참사 전 현장에는 위험을 감지하고 보고하도록 훈련받은 정보경찰관이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한성희 기자(che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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