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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EU의 脫중국 희토류 개발, ‘님비’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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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소비의 98%를 중국에 의존

“조만간 석유보다 더 중요해질 것”

자원무기화에 대비 개발 나섰지만

지역 주민·시민단체들 광산 반대

“유럽의 탈(脫)중국 희망이 지역 이기주의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스웨덴 남부의 노라 카르(Norra Kärr) 광산은 작년까지만 해도 유럽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여러 종의 희토류(稀土類)가 매장된 이 광산이 개발되면 희토류 공급의 절대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유럽의 ‘비정상적 상황’이 바뀔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광산 개발 사업은 2년 가까이 첫 삽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 지역 주민과 시민·환경 단체들이 일제히 개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희토류 광산이 정든 고향의 아름다운 모습을 파괴한다”고, 시민·환경 단체들은 “광산이 취수장이 있는 호수 근처에 있어 수자원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발을 추진하는 캐나다 업체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갱도를 파는 대신 지표를 깎아내 채굴하는 방식도 제안했으나, 반대 측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조선일보

유럽연합(EU)은 지난해 자체 희토류 광산을 확보하자는 ‘우선 자원 개발 프로젝트(priority mining project)’에 돌입했다. 중국 희토류에 대한 의존이 지금처럼 계속되면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새로 희토류 탐사에 나서는 것은 물론, 과거 희토류 매장이 확인됐으나 환경 및 비용 문제 등으로 방치했던 곳도 재개발을 추진키로 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주도로 현재까지 덴마크와 아일랜드,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 핀란드, 벨기에, 루마니아 등이 동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 고장은 안 된다”는 지역 주민의 님비(Not in my back yard·지역 이기주의) 행태와 환경 단체들의 반발이 심각하다. 포르투갈 일간 엑스프레소는 “EU의 야심 찬 프로젝트가 유럽 전역에서 난관에 부딪혀 사실상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스페인 서부의 발데플로레 계곡과 포르투갈 중부 푼다옹의 리튬 광산, 루마니아 서부 로비나 계곡의 구리 광산 등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는 리튬 탐사 허가가 난 올해 초부터 개발 찬성파와 시민 단체들이 이끄는 개발 반대파 주민들 간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루마니아에서는 개발 계획이 처음 시작된 2013년부터 환경 단체들이 광산에 독성 화학약품이 사용된다는 점을 적극 알리며 10년째 주민들 반대를 이끌고 있다. EU와 회원국 정부가 “중국에 대한 ‘자원 안보’가 필요하다”며 설득하지만 잘 먹히지 않는 실정이다. 폴리티코는 “시민·환경 단체들은 ‘광산 개발 전에 희토류 소비부터 줄이라’며 전기차 생산 감축, 대중교통 이용 강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중국 희토류 의존은 심각한 수준이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EU에서 소비되는 희토류의 98%를 중국이 공급하고 있다. EU 집행위 고위 관계자는 “중국에서 직접 생산되는 양도 많지만,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등에서 채굴한 희토류마저 중국에서 가공돼 넘어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유럽 기후·에너지·자원 안보센터는 “중국은 타국의 희토류 광산을 적극 개발해 사실상 자국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며 “첨단 산업에 쓰이는 중요 원자재의 80%가 중국산일 지경”이라고 했다. 중국이 60억달러(약 8조4700억원)를 투자해 개발한 콩고민주공화국의 코발트 광산이 대표적 사례다. 이 광산은 2021년 기준 전 세계 코발트 공급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2030년까지 희토류의 EU 내 수요가 현재의 5배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리튬과 희토류가 조만간 석유와 가스보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할 정도다. 블룸버그는 “EU는 중국이 과거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분쟁 당시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2개월간 중단했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EU를 대상으로도 충분히 ‘자원 무기화’에 나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EU 관계자는 “단기간에 지역 주민들의 인식 전환은 어려울 것”이라며 “러시아산 천연가스처럼 중국산 희토류 수입이 중단되는 사태가 터져야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폐전자제품에서 희토류를 재활용하는 ‘도시 광산’ 등의 대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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