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닫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이란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첩보가 정보당국 간에 공유되고 있어 중동 지역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에 대한 이란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사우디 측이 미국에 전달했다. 사우디, 미국 및 중동 지역 국가들은 군의 위기대응 태세를 격상했다.
WSJ에 따르면 이란은 사우디 및 미군이 주둔 중인 이라크 북부 쿠르디스탄 지역의 에르빌을 공격 대상으로 계획 중이다. 이란은 지난 9월 하순부터 이라크 북부를 수십 발의 탄도미사일과 무장 드론으로 공격해왔으며, 이 중 하나가 에르빌을 향해 날아가다가 미군 군용기에 의해 격추된 적이 있다. 이란 측은 에르빌에 근거지를 둔 이라크 내 세력을 '이란 쿠르드 분리주의자'라고 칭하면서 공격해왔다.
미국 정부는 첩보를 공유받은 후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런 경고에 우려하고 있다며 "이란이 공격을 실행한다면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군과 정보 채널을 통해 사우디와 상시 접촉 중이며 해당 지역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NSC의 한 공보 담당 직원은 설명했다.
사우디 정부 관계자는 이란의 사우디 공격 계획은 날로 격화하고 있는 이란 내 반정부 시위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란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경찰에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한 이후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시위로 약 200명이 사망하고 2000명 가까이 체포되는 등 이란 정부가 궁지에 몰리고 있다. WSJ는 "여성 인권 운동에서 촉발된 시위가 이란 공화국의 몰락을 요구하는 시위로 변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히잡 시위가 격화하는 과정에서 이란과 사우디 간 갈등이 쌓여 군사적 충돌로 분출되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호세인 살라미 이란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이란 시위를 '이란 인터내셔널' 등 위성 뉴스 채널로 보도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사우디에 경고했다. 당시 살라미 사령관은 "이번이 우리의 마지막 경고"라며 최후통첩 성격의 입장을 밝혔다. 이란인들을 시청자로 상정해 뉴스를 제작하는 이란 인터내셔널은 2017년에 런던에 설립됐으며, 사우디 왕실과 연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와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은 과거부터 있어왔다. 앞서 2019년에는 사우디 동부 지역의 유전이 드론 공격을 받아 원유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당시 사우디는 이를 이란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고 있어 긴장감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란 히잡 시위에 대해 수차례 경제 제재를 발동한 상태다. 또한 이란이 우크라이나 공습을 위한 소형 드론을 지원하고 이를 위한 교관들을 파견했다며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경색된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해당 첩보를 계기로 다시 호전될지도 주목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발표된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감산 결정에 대해 "사우디와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유가는 상승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1.84달러(2.13%) 오른 배럴당 88.3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필 플린 프라이스퓨처스그룹 선임 시장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경제를 재개방할 것이라는 기대로 유가가 이미 오르고 있던 중 이 같은 소식이 겹쳐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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