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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스토킹 신고하니 자녀까지 위협”…피해자 삶, 안 변했다 [스토킹처벌법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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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처벌법 시행 1년, 무엇이 바뀌었나

피해자 겪는 공포·2차 가해 여전

“경찰 경고 무시…가족들도 위협”

“정신적 피해에도 호소할 곳 없어”

헤럴드경제

이달 20일 서울 중구 신당역 앞. ‘신당역 사건’이 사전이 일어난 지 한 달 남짓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자를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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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빛나·박혜원 기자] 지금으로부터 1년 전. A씨는 “불법촬영물이 있는데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시작으로 옛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하기 시작했다. 스토킹을 멈춰 달라는 A씨의 말에 가해자는 “내가 아는 경찰·변호사가 있어서 알아봤는데 신고하면 너만 다쳐. 망해도 네가 더 망해”라고 말할 정도로 당당했다.

당당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A씨는 주거 침입, 납치 시도, 자녀 스토킹, 가족에게 무차별적인 연락 등 갖은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가해자가 구속되지 않은 채 사건은 검찰에 넘겨졌고, 이달 말 1심 재판이 시작된다.

21일로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흘렀지만 스토킹 피해자들이 마주한 장벽은 여전했다. 피해자는 가족·지인부터 경찰에게 자신의 피해를 설명하고, 증명하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고, 고립감을 느꼈다. 설령 피해를 인정받더라도 가해자의 접근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없어 공포감을 느꼈다.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국민적 관심을 촘촘한 제도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한 이유다.

경찰 무시는 기본…‘사각지대’ 가족 위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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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앞에서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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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가해자를 처벌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가해자의 폭력이 두려워 우회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시한 시기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며 스토킹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A씨는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받았음에도, 언제든지 집에 올 수 있다는 불안감에 지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A씨 사례는 스토킹 피해자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다. 올해 6월 전주지법에서 1심 유죄 판결이 난 스토킹 사건의 경우 가해자는 접근금지 조치를 받았으나, 피해자 집을 찾아가고 25회에 걸쳐 전화를 했다. A씨는 “가해자는 경찰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달 19일 스토킹 가해자에 대해서도 법원의 명령에 따라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법 사각지대인 가족을 노리는 경우에 대한 대책은 이번 개정에서 빠졌다. 스토킹 가해자들은 가족을 향해 가해 수위를 높이곤 한다. 올해 8월 인천지법에서 징역 3년 판결이 난 스토킹 사건 가해자는 피해자가 연락이 닿지 않자, 가족에게 음란 메시지를 보냈다. 자녀를 가해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A씨도 사비를 들여 자녀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았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상 스토킹 범죄로 직접 피해를 본 사람에 한해 피해가 인정돼 가족에 대한 보호조치는 없는 실정이다.

끊임없는 ‘2차 가해’…‘고립’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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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0일 서울 중구 신당역 앞. 여전히 ‘신당역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글귀를 적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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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마련된 지 1년이 흘렀지만 피해자가 스토킹 범죄를 알릴 때 듣는 비난도 여전했다. 피해자는 가족·수사관은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도 ‘2차 가해’를 받고 있었다. A씨는 가족에게 스토킹 피해 사실을 알렸다가 “네가 천박하게 놀아서 구설수에 오르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A씨는 “신당역 사건 관련 기사 댓글 중 ‘여자가 빌미를 제공했겠지’란 말을 보고 여전히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란 걸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를 비판하는 분위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6년 전 군 부대 내 스토킹을 알렸다 따돌림을 당했다는 B씨는 “피해 상담을 위해 찾아간 수사관은 ‘인기가 많아서 그렇다’고 (피해를 축소화해서) 말했다”고 말했다. 결국 비난을 받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일터나 고향을 떠나는 결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이 2차 가해로 정신적 피해를 입어도 호소할 곳은 마땅치 않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전국 성폭력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은 282곳이다. 2015년 349곳에서 67곳이 감소한 수치다. 이마저도 47곳은 진료과목이 산부인과뿐이라 스토킹 피해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불안, 불면 등 정신적 피해를 지원받기 어렵다. 용혜인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 전담 의료기관 자체가 없고, 지역별 편차가 심해 피해자가 필요한 때에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요청하지 않아도 스토킹 가해자를 즉각 처벌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는 이달 19일 스토킹행위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재발 방지를 위해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기로 발표하기도 했다. 손문숙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상담팀장은 “현행 법 제도는 피해자에게 처벌의 짐을 넘겨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한계가 있다”며 “피해자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사법기관이 스토킹범죄를 신속하게 처벌하도록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binna@heraldcorp.com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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