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모습· 화법·감정조절 등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와 분석
참여 저조… 年 100여명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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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판사에게 변호사가 설명을 한다고요?" "당신은 변호사 자격이 없으니 다음부터 오지 마세요"
매년 연말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표하는 '법관 평가'에는 법정에서 고압적인 언행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축시키는 문제 사례들이 담긴다. 변호인의 말을 끊거나, 호통을 치는 법관들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매년 문제 사례의 단골손님이다.
대법원이 법관들의 '법정 언행' 개선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컨설팅 사업은 올해 10년 차를 맞았지만, 여전히 참여하는 법관 수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개된 법정에서 재판하는 법관들의 모습에 따라 법원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결정되는 만큼, 법정 언행 개선을 위해 대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100여명 안팎만 참여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2013년부터 매년 희망하는 법관들을 대상으로 '법정 언행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매년 1억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가는 법정 언행 컨설팅은 법관들이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을 스스로 점검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개선할 수 있도록 대법원에서 마련한 사업이다. 재판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화법과 자세, 감정조절까지 외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와 함께 분석하고 개선방안을 듣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문가가 컨설팅 준비를 위해 '법정 블라인드 모니터'도 실시한다. 2017년부터는 사법연수원 기수 순으로 희망자를 선정하고 있다.
법정 언행 컨설팅에 참여했던 법관들은 대체로 "재판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참여하는 법관 수는 많지 않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법정 언행 컨설팅'에는 2019년 100명, 2020년 117명, 2021년 97명, 올해 113명 등 매년 100여명 안팎의 법관이 참여하는데 그쳤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보통 자기가 어떻게 말하는지 잘 모르다 보니 어떤 모습으로 얘기하는지, 어떤 말투와 제스처를 취하는지 점검하는 차원에서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면서도 "아무래도 잘 모르기도 하고, 바쁘다 보니 참여율이 저조한 것 같다"고 전했다.
법관들은 법정 언행 개선이라는 취지 자체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법정 언행을 인사평가에 반영하거나 컨설팅 사업 참여를 강제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사법 농단 사태 이후 법관들을 상대로 특정 행정 조치를 강요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다, '재판 독립성 침해'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혜택'으로 참여 유도해야"
'몰라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대법원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각급 법원 차원에서 재판부 간 방청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소위원회 차원에서 희망 법관을 대상으로 '형사 재판부 교차 방청' 시기를 정해 서로 재판 진행 전반을 점검한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서로의 재판을 방청하는 과정에서 동기부여나 자극이 될 수 있고,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며 "이런 경험이 있어야 어떤 사업이든 '나도 참여해볼까'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서로의 재판을 볼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보니 법관들은 법대 아래에서 바라보는 재판 당사자들의 상황을 제대로 알기 어렵고,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판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언행 개선 효과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참여 법관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법정 언행 컨설팅 사업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올해 8월 꾸려진 '법정 언행 컨설팅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는 법정 언행 컨설팅 사업과 사법연수원 연수 프로그램을 연계하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최 의원은 "법관이 국민보다 우월한 존재처럼 심판자의 위치에서 머물러선 안 된다"며 "법원에 대한 신뢰는 법관의 권위가 아닌 법관의 판단에 대한 권위를 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법정 언행의 원인을 법원 차원에서 찾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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