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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월)

바다 위 20㎞ 풍력단지…‘녹색’이 ‘성장’ 견인한 덴마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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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풍력의 나라 덴마크, 한국과 차이점]

세계 최초 해상풍력 단지 건설

30년 전 대비 온실가스 43% 수준

“기후대응이 산업경쟁력의 열쇠”

‘녹색전환’ 합의까지 십수년 걸려

2012년 ‘에너지 협정’으로 가속도

“보수가 집권해도 방향은 그대로”


한겨레

지난달 28일 경비행기를 타고 둘러본 덴마크와 독일 국경 지대. 덴마크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추진 중인 혼스레브 풍력단지가 보인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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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찾은 덴마크의 안홀트 풍력발전단지. 4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한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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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7일 오전. 독일 북부와 연결된 덴마크 본토(유틀란트반도) 동쪽에 위치한 그레노(Grenna)시 페리터미널을 출발한 배가 1시간 가량을 달린 뒤 바다 위에 멈췄다. 검푸른 바다 위에서 초속 10m의 강한 바람이 111개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힘차게 돌리고 있다.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 건설기업 오스테드가 2013년부터 안홀트섬 인근에서 운영 중인 앤홀트(anholt) 풍력발전단지다. 단지 길이만 20㎞에 이른다. 덴마크에서 소비되는 전체 전력량의 4%를 만들어, 40만가구에 공급한다.

오스테드에서 30년 가량 근무 중인 옌스 뉘보 옌센(Jens Nybo Jensen) 홍보담당자는 “(정부 통계를 보면) 설비·자재 등 공급물량만 4억6천만톤, 금액으로는 7천만유로(약 970억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했다. 공사 중에는 일자리 8천개를 창출했고, 공사 후에도 330개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안홀트 풍력단지 유지보수 시설에서 일하는 아네르스 비드 올센(Anders Hvid Olsen)은 “과거 해산물 건조시설을 개조한 건물이다. 나를 포함해 현지 주민들이 이곳 직원”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인 28일 오전 덴마크 서쪽 항구도시 에스비에르(Esbjerg) 공항을 이륙한 20인승 비행기는 덴마크와 독일의 국경 가까이까지 날아갔다. 국경이 맞닿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이용하기 위해 건설한 호른스레우 (Horns Rev 1~3) 풍력단지에서 수백여개의 풍력발전기가 파란 바다 표면 위에서 한가롭게 날개를 돌려대고 있다. 작은 항구도시 에스비에르에는 해상풍력발전단지 운영·유지보수 직원들이 이용하는 출퇴근용 선박 운영업체(MHO-CTV)와 변전소 구축 사업 등을 하는 중견기업(셈코마리타임)이 위치해 있다.

<한겨레>는 에너지전환포럼·기후솔루션·덴마크정부의 초청을 받아 지난 9월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덴마크 전역에 설치된 주요 해상풍력발전단지들을 둘러보고, 국회의원과 정부 당국자와 기업의 임원 등을 만났다. 덴마크와 한국의 차이는 제도와 여론 등에서 다각도로 확인됐다. 덴마크는 “2030년까지 북해와 발트해 인근 바다에 3GW짜리 풍력발전 시설 2곳만 가동하는 에너지섬을 짓는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며 “기후대응이 곧 산업 경쟁력을 갖추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녹색+성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기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레고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로 유명한 덴마크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0.1%를 차지하는 작은 나라이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43%(4만2천㎢), 인구는 남한의 11%(583만명)에 그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3면이 바다인 점을 활용해 해상풍력을 세계 최초로 상업화하며 ‘녹색성장’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43% 수준으로 감축한 기후위기 대응 선진국가로 손꼽힌다. 에너지(14%)와 물(39%) 소비량을 줄이면서도 국내총생산(GDP)을 62% 늘렸다.

우리나라와 덴마크는 2011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강조 이후 장관급 회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올해 12월에도 산업통상자원부와 덴마크 에너지당국 장관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지난 9월20일 서울 중구 주한덴마크대사관에서 만난 아이너 옌센 주한덴마크대사는 “한국이 반도체나 자동차에 강점이 있다면, 덴마크는 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이 발달했다. 최신 해상풍력 기술을 보유하는 데 40년이 걸렸다. 한국 기업 중에도 씨에스윈드·엘에스전선·세아제강 등 풍력발전 공급체인을 선도하는 곳이 많다. 양국이 서로 협력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가 처음부터 녹색 국가였던 것은 아니다. 항구도시 에스비에르가 보여주듯, 1970~80년대 북해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석유·가스전 개발 사업이 활발했다. 1972년 덴마크 정부가 51%의 지분을 소유하는 오스테드(구 동에너지)가 설립돼 가스·석유 시추에 적극 나섰다. 1차 석유 파동을 겪으며 에너지 안보에 눈을 뜬 뒤에도, ‘녹색 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시민·산업계·국회·정부가 합의한 1990년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무엇보다 2012년 국회에서 8개 정당 중 7개가 참여해, 2020년까지 풍력발전으로 전체 발전량의 50%를 충당하고, 2050년 이후에는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덴마크 에너지 협정’을 체결한 게 기폭제가 됐다. 우리나라의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위원회 격인 덴마크 국회 기후에너지유틸리티위원회의 라스무스 헬베그 페테르센(Rasmus Helveg Petersen) 위원장은 “덴마크에서는 보수정당이 집권하던 시절에도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느리기는 했지만 방향성은 유지했다.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이 성숙하고 화석연료 위기가 닥치면서 화석연료보다는 재생에너지가 (우리에게는) 옳다는 논리가 자리잡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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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우리나라의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위원회 격인 덴마크 국회 기후에너지유틸리티위원회의 라스무스 헬비 피터슨(Rasmus Helveg Petersen) 위원장이 국회 회의실에서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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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덴마크 오스테드 본사에서 만난 잉그리드 라우먼트(Ingrid Reumert) 오스테드그룹 수석 부사장이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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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앤더스 비드 올센(Anders Hvid Olsen) 덴마크 안홀트 풍력단지 유지보수 시설 직원이 건물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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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원자력 산업 반대가 없었던 이유


우리나라에선 해상풍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를 추진할 때마다 어민(주민)과의 합의, 원자력 업계 등 다른 발전산업계 및 학계의 반대, 고용 전환 문제 등에 부딪히곤 한다.

덴마크 국민 중 어민은 1만6천명(0.2%)에 불과했다. 우리나라(통계청, 2021년 기준 어민 9만7062명 전체 인구 중 어민 수는 0.2%)처럼 소수였다. 덴마크 어업법(Danish Fishery Act)은 사업 시행 전 반드시 어민들의 동의를 받도록 강제하고 있다. 어민들로서는 보상의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이 신뢰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전국 32개 지역 협회가 소속된 덴마크어민협회의 지속가능성 부회장을 맡고 있는 올레 룬베르 라르센(Ole Lundberg Larsen)은 “어민협회는 가급적 합리적 보상안을 어민들에게 제안하려 노력한다”며 “한국 어민들도 풍력발전 건설 계획 마련 초기부터 참여해 어민들의 법적 권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원자력발전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도 큰 차이였다. 덴마크 정부와 3개 산업협회가 함께 운영하는 ‘스테이트오브그린’의 마그누스 호이베르 메르닐(Magnus Højberg Mernild) 홍보팀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덴마크에서도 공기업 주도로 원자력에너지 연구가 활발했다. 그러나 안전 문제를 우려한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고, 1985년 핵발전을 철폐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재생에너지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원전에 대한 요구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1972년 설립 이래 40년 동안 석유·가스 기업이었으나 사업 전환에 성공한 오스테드그룹의 잉리드 레우메르트(Ingrid Reumert) 수석부사장은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없도록 석유·가스 자산을 매각할 때도 노동자들의 고용이 유지되도록 회사가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거지는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 문제에 기업도 책임있는 자세로 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상풍력 성장 돕는 정부·공적자금


거대한 풍력발전단지 건설이 완공되기까지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도 덴마크가 국제사회에 내세우는 자랑거리이다.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산하 공공기관인 에너지청은 정부 주도의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대한 입찰 등을 진행하면서 인·허가와 관련한 다양한 정부 부처 사이의 소통을 책임진다. 이 기관 국제협력부의 메테 크레메르 부크(Mette Cramer Buch) 수석자문관은 “해상풍력이 뜨면서 나쁜 의도의 사업자가 보상만 노리는 식으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지정 단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한 풍력발전 단지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는 사업자는 자연히 걸러진다”며 “(정부로서는) 해양공간환경계획(MSP)에 더욱 신경을 써서 각 부처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불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공적자금의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안홀트 해상풍력발전시설도 덴마크 연금(Pension Denmark)과 덴마크 최대 연금 펀드(PKA)가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덴마크 연금 가입자 85만명이 이 단지의 공동소유자가 됐다. 오스테드 역시 연기금이 주요 투자자이며, 이들 투자자가 오스테드의 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을 감시·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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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앞 바다에 위치한 미들그루덴 풍력발전단지. 풍력 확대 정책 초기에 건설된 소형풍력발전 단지(터빈 20개)다. 바람 방향 등 발전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고 도시 미관을 고려해 일렬로 단지를 건설한 점이 아쉬운 점 등으로 꼽힌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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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찾은 항구도시 에스비에르의 오스테드의 물류기지. 서유럽 해상풍력 터빈의 주요 부품들과 유지 보수 작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담당 직원이 터빈 등을 소개하고 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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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섬’인 한국에 필요한 상상력


풍력발전 초기 단계인 한국은 40년 전 덴마크와는 또다른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제도 마련,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전력 판매 시장을 개방하는 문제까지 다양하다.

특히 서로 그리드망이 이어져 있어 서로 전기를 사고 팔 수 있는 유럽과 달리 남한만의 ‘에너지섬’에 갇힌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한번 가동하면 멈추기 힘든 화석연료와 원자력 발전 비중을 줄일 수 없는 경직된 계통의 한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덴마크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전력을 사고팔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간헐성(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발전량으로 인한 문제)을 수출로 해결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수력발전과 덴마크의 풍력발전 등이 서로 맞물리며 시장 신호에 맞춰 발전량을 조절하고 있다.

덴마크 국영 송전회사이자 풍력단지 부지 조사를 진행하는 에너지넷의 울리크 묄레르(Ulrik Møller) 선임경제학자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높아질 때 전력도매가격(SMP)이 떨어지는 효과도 있어서 실제 전체 전력가격을 안정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전력시장도 계통의 변동성을 적용할 수 있는 측정 시스템(밸런싱 시장) 등을 갖춰가야 한다는 요구에 응답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며, 한국 역시 전력 시장의 개방적 운영을 당부했다. 그는 또 한국 정부가 수입 연료 가격이 급등하자 전기요금 인상을 막는 명목 등으로 한국전력의 전력도매요금에 캡을 씌우는 제도인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를 실시하려는 것과 관련해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부정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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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전력생산량을 보면 오일, 가스, 석탄 비중이 줄며 풍력과 바이오매스 발전이 늘어나는 흐름을 볼 수 있다. 출처: 스테이트오브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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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하는 국내외 요구는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기후·에너지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이럴 경우 한국 사업자들은 풍력발전단지 건설이 더욱 활발히 추진된다고 해도 이들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과제 역시 남아 있다. 인천·울산 등 한국 바다에서 진행 중인 풍력발전단지 건설 초기 단계에 코펜하겐해상풍력파트너스(COP)와 투자사인 코펜하겐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CIP), 터빈업체 베스타스 등 세계적 수준의 덴마크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과 이미 참여하고 있다.

덴마크 취재에 동행한 조공장 한국환경연구원 녹색전환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해상풍력을 추진하는 오이시디(OECD) 국가 중 국가가 입지를 선정하는 계획입지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현재 한국뿐"이라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 과제 앞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정치나 이념 문제가 아닌, 에너지안보와 산업경쟁력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펜하겐·에스비에르/글·사진·영상 촬영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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