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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영등포 안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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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서울 영등포구 성매매 집결지 일대의 모습.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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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못 없애죠?"

최근 서울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를 다룬 기사를 쓴 후배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이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했다. 기사는 국가가 성매매 집결지 땅 일부를 제공했고, 불법에 눈감은 사이 업주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2022년에, 서울 한복판에 성매매 집결지가 건재하다는 걸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 속에 묻어두고 있었을 뿐, 성매매 집결지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일상 속에 존재했다. 서울시 산하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 조직 '다시함께상담센터(센터)'가 제작한 소책자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에 따르면 집결지 반경 500m 이내에는 2개의 학교와 3개의 대형쇼핑몰, 3개의 관공서, 주택가와 아파트가 몰려 있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도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성매매 집결지를 '영등포 안 코끼리'에 빗댄 표현은 그래서 적확하다. '방 안 코끼리'는 모두가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려 하지 않는, 민감한 사안을 뜻한다.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곧 서울 지도에서 없어진다. 일대 재개발이 확정되면서 이 자리에는 수년 안에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선다.

그러나 집결지 폐쇄만이 능사가 아니다. 먼저 불법 수익으로 배를 불린 이들에 대한 응당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2004년 만들어진 성매매처벌법은 성매매 업주뿐 아니라 장소를 제공하고 임대료를 챙기는 건물주도 처벌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센터는 지난해 3월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내 건물·토지 소유주 50명을 영등포경찰서에 일괄 고발했다. 그러나 경찰은 1년 반 수사 끝에 '3명 송치'란 초라한 결과를 내놨다. 소유주를 처벌하려면 그가 자신의 건물이나 땅에서 이뤄지는 성매매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우리나라 수사기관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지 의구심이 든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고발인이 이의신청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 센터는 상위기관인 서울경찰청에 수사심의신청서를 내는 방식으로 재수사를 요구했다.

과거 다른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 폐쇄 사례에서 보듯 재개발이 결국 지주와 포주의 돈잔치로 끝나서도 안 된다. 성매매 영업이 이뤄진 땅의 일부는 엄연히 '국유지'였다. 땅 주인 기획재정부는 대부료(임대료)까지 챙겼다. 유리방(유리문 안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호객하는 형태의 업소)을 끼고 있는 도로의 일부는 영등포구청 관할 땅이었다. 구청도 이런 사실을 알고 해마다 변상금을 받았다. 국가와 지자체의 묵인·방조 속에 불법 성매매 영업으로 돈을 번 건물·토지주는 막대한 재개발 수익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성매매 집결지를) 도대체 왜 못 없애느냐"를 넘어서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수십 년 넘게 집결지가 운영되도록 눈감은 국가와 수사기관에는 어떻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요?"

"불법으로 돈을 번 지주들이 재개발 수익까지 챙기도록 놔둘 건가요?"

"집결지 폐쇄 후 여성 종사자들이 다른 길을 찾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이 많아질 때 비로소 코끼리를 온전히 방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윤태석 사건이슈팀장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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