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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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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의 대만위협·영유권 분쟁에… 필리핀, 친중서 친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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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주니어, 취임 후 예상 깨고 美와 결속 강화

필리핀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의 지난 6월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친중(親中) 일색 정책에서 벗어나 친미(親美)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 중인 중국의 위협이 커지는 데다 미국과의 경제 협력 필요성이 부각된 데 따른 것인데, 아세안 지역의 정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년이 넘는 장기 독재 끝에 1986년 축출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과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필리핀군은 지난 3일부터 미군과 남중국해, 대만과 필리핀 사이 루손해협 등에서 카만닥(KAMANDAG) 연합 훈련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양국 군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훈련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미군 기관지 성조지는 “훈련 목적이 무엇이든 필리핀과 중국이 영유권 분쟁 중인 가운데 (미국과 필리핀) 양국 군 협력의 장이 마련된 것이 중요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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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지난달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 ‘발리카탄’ 규모를 올해 8900명에서 내년엔 두 배 수준인 1만6000명으로 늘리겠다고도 했다. 지난달 5일 호세 마누엘 로무알데스 주미 필리핀 대사는 대만 유사시 미군이 필리핀의 군사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취임 이후 아세안을 제외한 첫 해외 순방국으로 선택한 나라도 미국이었다. 미국도 이에 화답, 지난달 22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총회를 위해 방문한 수많은 각국 정상 중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 외에 마르코스 주니어와만 양자 회담을 가졌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방미 기간 “미국이 동반되지 않은 필리핀의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임자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취임 뒤 중국부터 방문해 “필리핀은 미국과 분리된 나라”라고 선언한 것과 대조적이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친미 행보는 두테르테 정권의 친중 노선을 계승할 것이란 예상을 깬 것이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두테르테의 딸 사라 두테르테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유세 중에도 “두테르테 정부의 대중국 포용 정책이 비판받지만 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취임하면서부터 달라졌다. 그는 취임사에서 “영토를 1제곱인치라도 외세에 내주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을 겨냥했다. “친중 노선을 걸을 것”이란 예측을 완전히 빗나가게 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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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시위대가 지난 7월 마닐라 인근 마카티에 위치한 중국 영사관 앞에서 '서필리핀해를 지키자'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남중국해(서필리핀해)는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 여러 국가가 영토분쟁을 겪는 바다로, 국가 간 분쟁이 격화되자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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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나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다. 중국은 2012년 남중국해의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의 스카버러 암초를 강제 점거했다. 2016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기각했지만 중국은 막무가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손을 내밀었다. 미 국무부는 지난 6월 성명을 통해 “미국은 중국의 남중국해 도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필리핀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지지를 받은 마르코스는 지난달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중국해 논란은 국제법적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을 압박했다.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이 커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만 주변에서 증가하는 중국의 군사 활동이 필리핀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남중국해에서 거리상 대만과 가장 가까운 필리핀이 위기를 느낀다는 것이다.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도 마르코스 주니어가 방미 중 언급한 ‘필리핀의 위기’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상황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을 의미한다고 했다.

마르코스 주니어가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난 극복을 이루기 위해서도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중국은 2016년 두테르테 정권에게 교통 시설, 수력발전소, 제철소 등 총 240억달러(약 34조원) 규모의 투자와 차관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은 PCA 판결과 코로나 등의 여파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작년까지 중국으로부터 받은 투자는 32억달러(약 4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최근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등 3곳에 대해 중국이 약속한 철도 사업 대출 실행을 철회하기도 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필리핀 건국 초기 경제성장 동력은 미국 기업에서 나왔다”며 미국에 투자와 경제 협력을 요청했다.

필리핀 국민의 반중 정서가 커진 것도 친미로 선회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미국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도는 2017년 40%에서 2019년 54%로 증가했다. 더지오폴리틱스는 “2019년 중국이 필리핀 EEZ 내 인공섬을 확장하고, 중국 트롤선이 필리핀 보트를 들이받은 이후 반중 감정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더 디플로맷은 중국의 공격적 외교,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미흡한 인프라 제공 이행이 여론과 정책 변화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서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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