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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함영준의 마음PT] 노벨상 3분의 1 휩쓰는 유태인들 ‘쉼’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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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에는 온 가족이 총출동해 충남 공주로 밤 따러갔다. 공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밤 생산지로, 이곳에서 나는 밤은 씨알이 굵고 맛이 좋아 예로부터 임금님 진상품으로 유명했다. 마침 큰 동서가 은퇴 후 밤나무가 딸린 조그마한 텃밭을 사서 농작물을 키우고 있어 가을놀이 겸 찾아간 것이다.

조선일보

밤송이./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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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렀고, 기온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초가을의 완벽한 날씨였다. 야산의 싱그러운 풀내음과 맑은 공기, 텃밭에 심겨진 녹색 채소들과 알록달록한 뜨락, 그 한쪽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밤나무 가지에서 툭툭 떨어지는 밤송이들….

특히 8살 배기 손녀딸이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그 녀석과 둘이서 열심히 밤을 줍고, 밤을 땄다. 툭툭 터지는 잘 익은 밤송이에서 알밤을 골라내 광주리에 담고, 긴 장대로 나무 가지를 탁탁 두드려 후드륵 털어낸다. 이리저리 떨어지는 밤송이를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가을향기가 은은하게 다가온다.

손녀딸과 잠시 그늘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쉬었다. 이거야말로 완전한 휴식이요, 행복이었다.

조선일보

주말 충남 공주로 내려가 손녀딸과 밤을 따고 있을 때 완벽한 휴식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 문득 30년 전 미국 워싱턴에 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당시 우리나라의 화두는 선진화였다. 이를 위해 당시 내가 몸담았던 신문사는 전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유태인 파워에 주목했다.

특히 미국은 유태인이 움직이는 국가다. 미국의 유태인은 전체 인구의 2.2%가 넘는 650만명 정도인데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전 분야를 주무르고 있다.

미국 100대부자의 3분의 1,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 아이비리그 명문대 교수진의 40%, 법조계 엘리트 50%, 헐리우드 영화계의 60% 이상이 유태인이었다.

도대체 그들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주변 유태인 동네를 찾아갔다. 88 서울올림픽 때 한국에서 살았던 조지 워싱턴대 교수 소개로 유태인 교회, 학교, 가정 등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취재한 결과 3가지로 집약할 수 있었다.

첫째는 이제 우리도 잘 아는 유태인들의 교육 방식이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쌍방이 소통하는 자율식 교육이었고, 옳다(O), 그르다(X)가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과정(창의성)을 중시했다.

둘째는 유태인들의 인간관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고 기록한다.

예컨대 그들의 가장 위대한 영웅인 다윗왕이 부하장군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는 ‘만행’도 그대로 기술하고, 선지자 모세가 순간적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집트인을 죽인 ‘살인자’란 사실도 그대로 가르친다. 사실(fact)을 사실대로 알려줌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확실하게 알고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유태인들의 이야기가 내게 신선하게 다가온 것은 인간의 공(功)과 과(過)를 분리해 생각하는 유연성과, 용서와 희망을 통해 인생은 언제든지 반전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 셋째는 쉬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전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 자신들의 안식일인 토요일 24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교회당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출도 삼가고 집에서 쉬면서 자기 성찰과 고요함 속에 머무른다.

심지어 종일 전깃불, 전화, 컴퓨터,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를 일절 사용치 않고 자연생활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에는 마음껏 야외에 나가 스포츠나 놀이문화 등을 즐긴다. 진정한 심신의 휴식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때 만난 유태인 사업가는 자신들의 노동 철학은 ‘열심히 일하라’보다는 ‘우선 잘 쉬고 신나게 논 뒤 일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야 행복과 창의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 솔직히 30년전, 주말에도 직장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던 당시 나로서는 그들의 쉬는 방식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과 달리 우리는 지금까지도 계속 쉴 새 없이 일하고 달려 왔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OECD 국가중 자살률·우울증 1위가 됐다. 나 역시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우울증을 맞고 호된 시련을 겪었었다.

다행히 그때 배운 명상으로 나만의 쉼과 느림의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유태인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내가 하는 명상이 본질적으로 매우 비슷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명상은 시시비비(是是非非),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그래야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다.

유태인 교육도 마찬가지다. 정답·오답이 아니라 인간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가르치려고 한다.

둘째, 명상은 산만하고 방황하는 마음을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마음 피트니스다. 그럼으로써 평정, 고요함, 기쁨, 성찰, 지혜를 얻는다.

유태인들의 쉼 방식도 마찬가지다. 문명 이기조차 금하고 철저하게 하루를 쉼으로써 일상을 내려놓고 돌아보고 충전하고 지혜(창의력)를 얻는다.

이렇게 일체 판단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쉼의 습관’이야말로 21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녀딸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밤 따러 가요…”

나는 벌떡 일어나 막대기와 광주리를 챙겨 들고 밤나무로 향했다. 100% 완벽한 휴식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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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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