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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25년차 록 밴드 “북과 나팔이 만든 원초적 소리 들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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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7집 발매한 ‘허클베리 핀’ 셰익스피어 영감받은 곡 등 실어

“최신 팝 듣고 정체성 고민까지… ‘록’ 밴드에 국한되지 않을게요”

조선일보

최근 6집(2018년) 이후 4년 만의 7집 ‘더 라이트 오브 레인(비의 빛)’을 낸 3인조 밴드 허클베리핀. 왼쪽부터 멤버 성장규, 이소영, 리더 이기용. /샤레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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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작품 후기로 갈수록 비극보다 희극을 주로 썼대요. 제 자아가 천천히 역경을 털어낸 과정과 닮았다 싶었죠.”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작업실에서 만난 밴드 ‘허클베리 핀’의 리더 이기용이 말했다. 멤버 이소영, 성장규와 함께 22일 새로 발매한 정규 7집 ‘더 라이트 오브 레인(The light of rain)’ 수록곡 ‘템페스트’를 들려준 직후였다. 이 노래는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동명 희곡에서 제목과 영감을 따온 곡. 이 외에도 ‘적도 검은 새’ ‘눈’ 등 10곡이 이번 음반에 실렸다. 11월 12일에는 홍대 상상마당에서 이를 처음 선보이는 ‘옐로우 콘서트’도 열린다.

1998년 정규 1집 ‘18일의 수요일’로 데뷔한 허클베리 핀은 라이브 연주로 짜임새 높은 곡들을 선보이며 ‘한국 모던 록의 자존심’이라 불려왔다. 이 데뷔 앨범과 정규 3집 ‘올랭피오의 별(2004년)’은 ‘한국 대중음악사 100대 명반’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 7집 역시 매 곡마다 마치 한편의 문학 작품처럼 치밀하게 구조를 짜고 다채로운 소리를 채워넣었다. 하지만 기존의 그들답지 않은 낯선 소리들도 가득해 보였다. 가상 드럼을 앞세운 강렬한 박자감, 최신 팝에서 주로 보이는 반복되는 후렴 멜로디 구조까지.

록이 싫어진 ‘변절’은 아니었다. 25년 차 밴드는 대신 ‘정체성 고민’을 고백했다. 이기용은 “몇 년 전 딸이 좋아하는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2010년대 이후 팝과 힙합 장르에 정말 많은 소리 변화가 생겼더라. 이후 두아 리파, DJ 마시멜로, 테일러 스위프트, 위켄드 등 해외 팝스타 곡들을 처음 탐닉했다”고 했다.

그는 데뷔 초를 “밴드 낭만주의 시대였다”고 표현했다. “무사가 칼 들고 전장 나가듯 각자 악기 들고 연주만 잘하면 됐죠. 하지만 이젠 가상 악기로 온갖 소리를 내요.” 베이스, 드럼, 기타로 귀결된 밴드 소리가 오히려 자신들을 둘러싼 ‘틀’이 됐다는 뜻. 이기용은 “그래서 우릴 더 이상 ‘록’ 밴드라 소개하지 않는다. 록 음악에만 헌신적인 청자도 이젠 드물지 않으냐”며 웃었다.

전작 6집 ‘오로라 피플’은 이기용이 심하게 앓던 마음의 병을 제주도 살이로 다스린 직후 만들었다. 이번 7집은 서울 살이를 재개하고, 팬데믹을 거치며 깨달은 ‘소중한 사람들의 유대가 주는 힘’을 담으려 했다. 이를 위해 앞세운 소리가 ‘드럼과 트럼펫’. “전쟁, 제사 등 고대부터 쓰인 원초적인 언어가 북과 나팔”이다. 이기용이 말했다. “‘먼지를 털듯이 과거를 버렸어/내 안의 두려움도.’ 과거의 저처럼 내적 갈등을 겪는 분들께 힘이 되고자 쓴 신곡 템페스트 가사죠. 인간의 유전자에 박혀있는 소리들로 전했으니 더 잘 가 닿았으면 합니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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