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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 (수)

이탈리아 극우 정당 집권…EU ‘반푸틴’ 대오에 균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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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의 형제당 대표가 26일 로마의 선거운동본부에서 ‘고맙습니다 이탈리아’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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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극우 정치 세력의 재부상이 거세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각) 실시된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신나치에 뿌리를 둔 극우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이 이끄는 우파 연합이 승리하며 이탈리아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우파 성향이 강한 정부가 탄생하게 됐다. 지난 11일 스웨덴 총선에서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20%를 넘게 득표하면서 연정에 참여하게 된 데 이은 또 한번의 극우 돌풍이다.

‘이탈리아 형제들’과 극우 ‘동맹’(Lega), 중도 우파 ‘전진 이탈리아’(FI)가 참여한 우파 연합은 26일 오전 전체 투표의 95%가 개표된 가운데 상·하원에서 각각 44.1%와 43.9% 득표해 양원 모두를 장악하게 됐다. 민주당이 이끄는 좌파 연합의 득표율은 각각 26.2%와 26.4%였다. 이탈리아 형제들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는 26일 “모두를 위한 통치를 하겠다”며 “우리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이탈리아 <안사> 통신이 전했다.

이런 선거 결과는 코로나19 대유행 충격과 함께 퇴조·분열 기미를 보이던 유럽의 극우 세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유럽의 경제 위기를 틈타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극우 세력은 ‘코로나19 2년을 버틴 뒤 얻은 건 물가 폭등뿐’이라는 대중의 불만이 기존 정치 세력 거부로 향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의 극우 세력은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2020년에는 확연한 퇴조 양상을 보였다. 그해 10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지방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7%의 득표로 5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2017년 연립 정부에 참여하며 승승장구하던 때와 대조적인 몰락이다. 2019년 지지율이 30%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이탈리아 극우 정당 ‘동맹’의 지지율은 1년여 만에 20% 수준까지 떨어졌고, 2018년 15%를 넘던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지지율도 10%에 근접했었다. ‘덴마크 인민당’, ‘노르웨이 진보당’ 등 북유럽의 극우 정당의 인기도 함께 떨어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위기 의식을 느낀 유권자들이 극우 정당에 등을 돌린 것으로 지적했었다. 당시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아르민 라셰트 주총리는 “시절이 좋을 때는 유권자들이 포퓰리즘 정당에 표를 주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믿을 수 있는 정당을 찾게 된다”고 평했다. 유럽 극우의 퇴조는 지난해 9월 26일 독일 총선에서 중도 좌파인 사민당이 승리하면서 16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하자 더욱 확고해질 듯 보였다.

이런 흐름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무너졌던 일상과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대하던 와중에 전쟁이 터지면서 안보 불안감과 에너지 위기가 동시에 덮친 탓이다. 이와 함께 극우 세력의 목소리에도 일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4월의 프랑스 대선에서 르펜 후보는 반이민 정책 등 극우 색채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에너지에 대한 부가가치세 인하 등 물가 대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동안 극우 세력의 핵심 주장이던 이민자 문제는 전쟁 때문에 묻혔고 러시아 제재에 따라 유럽이 치러야 할 대가가 극우의 새로운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유럽연합(EU), 국가주의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형제들’ 대표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의 탄생은 앞으로 유럽연합에 큰 골칫거리가 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과 러시아 추가 제재, 올 겨울 에너지 위기 극복 등 산적한 과제 해결을 위해 회원국들의 분열을 잠재우느라 애를 쓰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유럽연합 내 3위의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가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올 경우, 헝가리 등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정책에 제동을 걸던 회원국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 독일 사민당의 라르스 클링바일 공동 대표는 최근 멜로니 대표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같은 ‘반민주적 인사’들과 제휴해왔다며 그가 이끄는 정부의 등장은 유럽연합의 협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탈리아는 2026년까지 유럽연합으로부터 1915억유로(약 265조원)에 달하는 코로나19 회복기금을 받아야 하는 데다가 국내총생산(GDP)의 150%에 달하는 국가 채무 등 어려운 재정 상황 때문에 노골적인 반유럽연합 정책을 펴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세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우파 연합 안에 친러시아 인사들인 ‘전진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쿠니 전 총리와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가 있는 점도 유럽연합으로서는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유럽연합은 당장 8차 러시아 제재에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제재를 포함시킬지, 징집을 우려해 탈출하는 러시아인들을 받아줄지 등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갈등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전쟁 장기화에 따라 회원국간 이견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극우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가 유럽연합의 큰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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