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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해외 기업이 휩쓸던 건설관리 시장에서 공격적 M&A로 '우뚝' [톡톡! 경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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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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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건설사들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국내 주택 시장 수요 위축으로 예년과 같은 분양 호황을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원자재가격 인상 등으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매출에서 국내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설사들은 '비상 경영'까지 선포하고 나섰을 정도다.

반면 해외 건설 시장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시작된 긴 침묵을 깰 태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고유가 기조는 중동 산유국들의 발주에 빗장을 풀었고, 치솟는 환율에 단기적인 환차익까지 기대하게 한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9월 23일까지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금액은 22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173억달러 대비 29.5% 늘어났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은 해외 건설 시장의 가능성을 한발 앞서 내다본 경영자 중 하나다. 한미글로벌은 2017년부터 최근 5년 동안 영국과 미국에서 5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수년째 지속된 코로나19로 해외 건설 시장에 냉기류가 흘렀지만 그는 되레 해외 사업 강화를 위한 발판을 넓혔다.

김 회장은 1996년 한미글로벌(옛 한미파슨스)을 설립하고, 국내에 처음 건설사업관리(PM) 개념을 도입했다. PM은 사업 기간과 사업 예산, 건설 품질, 안전 등 건설 과정에서 최적의 성과를 내기 위한 사업관리 서비스다. 한미글로벌은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삼성동 아이파크, 을지로 SK T-Tower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성과를 냈다.

한미글로벌은 2002년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IMF 외환위기라는 악조건에서도 서울 월드컵경기장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낼 정도로 실력을 입증했지만, 해외 시장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세계 시장에서 굴지의 기업과 경쟁하려면 세계 표준(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M&A에서 답을 찾았다.

김 회장은 "처음 중동에 진출해 사업을 하다 보니 경쟁사들이 중국, 인도, 한국 업체가 아니라 선진국 자이언트 기업들이었다"며 "직원 3만~5만명을 데리고 중동의 신도시 하나를 맡아서 종합 관리하는 회사들을 상대하다 보니 한국 업체로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해외 시장 공략의 성패를 좌우할 또 다른 성공 요인을 철저한 현지화 전략에서 찾는다.

그는 "중동은 입지적으로 아시아이지만, 우리는 이곳을 선진국 시장으로 간주하자는 원칙을 세웠다"며 "경쟁 상대가 자이언트 기업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위주로 책임자를 선정했고, 중동에서 조인트벤처(합작기업)를 통해 현지 네트워크와 정보력을 강화하면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M&A한 해외 기업에 한국인 직원들을 두지 않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김 회장은 "선진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회사를 M&A해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메워야 하는데, 우리 원칙은 '필요해서 회사는 사지만 우리가 그 회사를 경영할 능력은 없다'는 것이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펼치고 경쟁하려면 '한국 사람 위주로 하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이는 글로벌 자이언트 기업들을 상대하며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전략이 통했을까. 한미글로벌은 올해 상반기 매출의 42%(691억원)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41% 늘어난 수치다.

미국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4% 늘어난 460억원을 기록했고, 사우디아라비아 매출은 97억원으로 전년보다 3배 가까운 성장세를 나타냈다. 영국 매출도 16억원에서 49억원으로 큰 폭으로 늘었다. 이 밖에 중국 매출이 37억원으로 37% 증가했고, 헝가리 매출도 22억원으로 51% 늘었다.

특히 한미글로벌은 지난해 사우디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인 '네옴시티'의 일환인 '네옴 더 라인(NEOM The Line)' 프로젝트의 특별 총괄프로그램관리(e-PMO) 용역을 수주한 이후 사우디에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올해 6월에는 사우디 국영 부동산 개발업체 로슌(Roshn)이 발주한 155억원 규모 주거 복합단지 조성 PM 용역을 수주했고, 7월에도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있는 디리야 게이트 개발청(DGDA)이 발주한 440억원 규모 주거 복합단지 PM 사업을 수주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확보에 주력한 결과 한미글로벌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글로벌은 미국의 세계적인 건설 전문지 ENR(Engineering News Record)가 발표한 '2022 ENR 톱 인터내셔널 서베이'에서 글로벌 CM·PM 부문 세계 8위에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은 앞으로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팀 코리아'가 활발히 조직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시공기업이 입찰 수주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며 "정부 등 공적기관과 금융, 시공, 설계, 엔지니어링, PM업체, 제조업체들이 함께 손잡고 판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해외 건설사업도 종합 무역상사와 같은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사우디에서 수많은 공사가 발주되지만 승강기 공장, 자재 생산 공장도 없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 종합 무역상사가 철강이 필요하다면 제철 공장을, 섬유가 필요하다면 섬유 공장을 만들었듯이 한 지역을 맡아 여러 필요한 시설을 집어 넣고, 니즈를 채워주는 흥미로운 시도가 팀 코리아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행복 경영 전도사에서 건축여행 가이드로 나서

'세계현대건축 여행' 집필

매일경제

"그동안 여행을 못 갔잖아요. 여행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건축 여행, 도시 여행을 하시라는 뜻을 담아냈습니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이 건축·도시 여행 가이드로 변신했다. 지난 6월 출간한 '세계 현대건축 여행'을 통해서다. 이 책은 세계 주요 도시의 아이콘이 된 대표적인 현대건축을 소개하는 인문 건축 여행서인데, 김 회장은 그동안 출장과 여행으로 방문했던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현대건축물에 깃든 의미와 상징을 풀어냈다. 책은 독자들에게 미술관에 입장한 듯한 인상을 준다. 도슨트가 나와 미술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도시와 건축물에 대한 배경을 알기 쉽게 풀어낸다. 김 회장은 "우리가 여행을 갔을 때 보는 것의 80~90%는 도시와 건축물"이라며 "일반인들에게 건축과 도시 랜드마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펜을 놓지 않는 경영인이기도 하다. '행복한 구성원이 탁월한 회사를 만든다고 믿는다'는 그의 철학을 담아 2010년 출간한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김 회장은 '행복 경영'을 주제로 차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행복한 기업을 조직 문화로 추구하고 처음 냈던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는 책이 나온 지 12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사회는 달라진 게 없다"며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 측면에서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상을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김종훈 회장은…

1949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건축대학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한미글로벌(옛 한미파슨스)을 창업하고 국내 최초로 건설사업관리(PM)를 도입해 서울 월드컵경기장, 롯데월드 타워, 타워팰리스 등 국내외 총 2700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2005년부터 매경이코노미 '대한민국 100대 CEO'에 16번 선정됐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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