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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일)

“‘일자리 쪼개기’ 해서라도, 장애인 일자리 꼭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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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출근합니다]

장애인 고용 44% 화장품社 ‘동구밭’ 대표 노순호씨

거제 출신 법대생, 농업은 망하고 화장품으로 대박

“전국 곳곳에 발달장애인 함께하는 동구밭 만들 것”

#에그스토리

“동요 ‘과수원길’에 나오는 건 동구밖이구요, 저희는 동구밭입니다. 동네 어귀에 있는 텃밭을 말하죠.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선 어딘가에서 만나 함께 어우러져 살자는 뜻으로 제가 만든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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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기도 하남시 화장품회사 동구밭 제1공장. 노순호 대표가 '동구밭' 로고가 찍혀 있는 포장박스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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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서 상경한 더벅머리 대학생이었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대학생이니 ‘사회문제를 외면하면 안된다’ 정도의 생각을 가졌을 뿐이다.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동아리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발달장애인들을 만났다. 선후배와 함께, 발달장애인들과 도심에서 텃밭을 가꾸는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 이름이 ‘동구밭’이었다.

텃밭가꾸기는 4년 뒤 발달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회사로 변신했고, 지금은 연매출 118억원에 수출까지 내다보는 소셜벤처기업이 됐다. 장애인 고용률도 44%가 넘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사는 진짜 텃밭이 생긴 것이다. 화장품회사 ‘동구밭’의 노순호(31)호 대표를 만나 드라마틱한 그의 삶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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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에 발달장애인이 있나.

“없다. 일가 친척 중에도 없다. 다만 5~7살까지 다녔던 유치원이 장애·비장애아들이 섞여 있는 곳이어서 어릴 때부터 발달장애 친구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그냥 마음이 늦게 자라는 친구, 나랑은 조금 다른 친구 정도로 생각했다.”

-언제부터 발달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나.

“대학 때 사회공헌 경영학회 활동을 하면서다. 솔직히 관심을 가졌다기보다, 사회문제와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발달장애인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다른 장애인들과 달리 발달장애인들은 학교를 마치면 갈 곳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젊으니까, 대학생이니까 이 때 만큼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취업, 취업 하던 때여서 뭔가 조금은 다른 투자를 해보고 싶었다.”

홍익대 법학과 10학번인 노순호 대표는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사회문제를 비즈니스 모델로 해결하자는 국제 대학생 동아리 ‘인액터스’에 들어갔다. 여기서 발달장애인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도시농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농사가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였고, 어떤 활동을 했나.

“동구밭 프로젝트였다. 2013년 당시 옥상텃밭, 주말농장 등이 유행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또래의 발달장애 친구들을 찾아 함께 농사를 지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장애 친구 5명을 찾았고, 강동구청 도움으로 30여평 남짓한 텃밭도 무상으로 빌렸다. 저를 포함해 동아리 선후배 6명이 그들과 주 2~3회씩 텃밭에 모여 상추, 고추, 깻잎 등 쌈채소를 기른 것이 시작이었다.”

-동구밭 프로젝트는 성공했나.

“딱 6개월 만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농부가 되고 싶은 장애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농사도 물론 망쳤다. 계속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 2014년 초 ‘그만하게 됐다’고 통보하려고 장애 친구 부모님들을 모시고 결산 간담회를 열었는데, 거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우리 애들이 친구가 생겼다고 너무 좋아한다. 동구밭에 가는 날이면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전날 일기예보를 챙긴다’는 반응이었다. 그 순간 ‘가르친 게 아니라 배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비즈니스로의 연결은 결국 실패한 것인가.

“1기 강동구를 끝으로 접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송파구, 마포구 등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연락이 왔다. ‘우리 아이들과도 해 달라’고 했다. 농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친구가 됐다는 것, 함께 어우러져 소통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 4년 가까이 이어졌다. 나중엔 텃밭이 서울·경기지역 28곳으로 늘었다. 어린이대공원, 경희궁 안에도 생겼다. 참가자도 400여 명에 달했다. 도중에 법인을 만들어 정부지원 사업을 따낸 적도 있다. 하지만 실패했다. 휴학에 휴학을 거듭하며 학교도 그만두고 쏟아부었지만 돈 버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결국 초창기 멤버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나 혼자 남았다. 물론 후배 한 명은 아내가 되었지만.(웃음)”

-갑자기 비누사업에는 왜 뛰어들었나.

“만들어 놓은 법인을 없앨 수가 없었다. 그러면 진짜 발달장애인들과 만날 ‘동구밭’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해서 이어가고 싶었다. 비누는 당시 장애인 회사에서 많이 만들던 제품이다. 이유는 작업이 단순하고 쉬운데다 초기 자본이 적게 들기 때문이었다. 특히 농산물 사업 때 실패의 원인 중 하나였던 유통기한이 길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천연비누라면 업계에서 1등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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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밭’이 만든 고체샴푸. 동구밭 제품에는 세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문양이 로고처럼 새겨져 있다./동구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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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비누가 일반비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일반 비누가 인스턴트 음식이라면 천연비누는 정성 들어간 요리다. 코코넛이나 올리브 등 식물성 오일에 오이, 가지, 바질 등 콘셉트 성분을 배합해 응고시키고 1000시간 정도 저온 숙성시킨다. 제작 기간만 40일 정도 걸린다. 그래서 가격도 비싼 편이다. 하지만 좋은 품질로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시작한 사업이니까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한 천연비누가 우리에겐 딱이었다.”

-발달장애인들이 일을 잘해내는가. 어려움은 없었나.

“우리 회사는 거의 모든 공정에서 장애 직원과 비장애 직원이 함께 투입된다. 물론 그 속에서 섬세하고 어려운 작업은 비장애 직원들이 맡는다. 물론 힘들 때도 있다. 장애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못따라와서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때마다 우린 공정을 나누거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공정을 만들어 일을 맡긴다. 대학 때 동구밭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지는 회사를 만들려면 그래야 한다.”

-장애 직원들은 어떻게 뽑나. 업무 가능한 사람만 뽑는 건 아닌지.

“그게 가장 마음 아프다. 장애인 보호 시설이 아니라 회사니까 모든 장애인을 채용할 수는 없다. ‘스스로 출퇴근과 신변 처리가 가능한 사람’을 채용 기준으로 뒀다. 면접을 통해 업무능력 등을 본다. 우리 직원들은 대부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반복 훈련을 하면 단순한 업무가 가능하다. 그래서 전원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회사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나눠준다.”

-그런데도 매출이 늘고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운이 좋았다.(웃음) 처음엔 화장품 회사들을 상대로 OEM, ODM 방식 납품을 주로 했다. 기존 화장품 회사의 인정부터 받자는 계획이었다. 이어 주방세제나 샴푸, 린스를 고체화해서 내놓은 상품이 히트를 쳤다. 플라스틱 용기를 없애고 종이에 포장했고, 화학성분 대신 피부와 환경에 좋은 성분을 농축해 만든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발달장애인들이 많이 다니는 회사라는 이미지도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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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기도 하남시 화장품회사 동구밭 제1공장에서 노순호 대표가 성형을 마친 고체 주방세제들이 담긴 박스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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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하겠는가. 회사가 커질수록 쉽지 않을 것 같다.

“고민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장애인 많이 고용해서 생산성이 떨어진다거나 원가가 높아진다면 경영자로서 당연히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이 오래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게 목적인 회사 아닌가. 개인적인 성공이나 돈 욕심 때문에? 초심이 사악하게 변해서 장애 직원 수를 줄이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전국 곳곳에 동구밭을 만드는 것이다. 직접 다 할 수는 없을테니까 나같은 사람이 발달장애인 자립을 돕는 회사를 만들겠다면 투자하고 싶다. 물론 그러려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지만. 저 멀리 지방이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고 어울리는 곳은 필요하지 않을까.”

[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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