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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절대 눕히지 마세요, 서늘한 곳에 세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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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지호 기자의 위스키디아]

A씨가 조니워커 블루 한 병을 꺼냈다. 송년회 겸 한 해 동안 고생한 동료들을 위해 나름 귀한 술을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좀 수상하다. 목까지 차 있어야 할 위스키가 병의 어깨 선까지 내려와 있었다. 한 모금 마시고 뚜껑을 다시 밀봉한 느낌이랄까.

의심도 잠시, A씨는 위스키에 대한 짧은 설명과 함께 힘껏 병목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맥없이 뒤틀려 바스러진 위스키 뚜껑만 쥐어져 있었다. 정작 빠져야 할 코르크는 병목 깊숙이 박혀 모두를 비웃는 듯했다.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조선일보

위스키 병에 코르크가 빠져 있는 모습.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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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박힌 코르크는 건드릴수록 상황이 악화될 확률이 높다. 그냥 손으로 밀어 넣는 게 제일 깔끔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게 안 된다. 대부분 분투 끝에 가루가 돼 병 안에 떠다니는 코르크를 입으로 걸러내면서 그제야 후회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위스키를 한 모금 입안으로 흘려보내는 순간 직관적으로 뭔가 잘못됐음을 느낄 수 있다. 과학실에서 잘못 제조한 알코올 음료가 있다면 이런 맛일 것이다. 유난히 쓴맛이 강하고 위스키의 바닐라 성분이 기묘한 향신료로 바뀐 느낌이다. 박하 맛이 나기도 한다. 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위스키를 구매했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위스키를 와인처럼 눕혀서 채광 좋은 곳에서 장시간 보관했다면, 그 술은 높은 확률로 문제가 생길 것이다. 40도가 넘는 높은 도수의 원액이 코르크에 닿게 되면 부식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 와인은 살짝 눕혀 보관해야 코르크 마개와 액체가 맞닿아 코르크의 수축을 방지할 수 있는데, 위스키에 그건 독이 되는 짓이다.

위스키는 직사광선을 피해 세워서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햇빛은 위스키에 들어가 있는 캐러멜 색소를 파괴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은 결국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또 높은 온도는 알코올을 기화시킨다. 위스키가 가진 좋은 맛 성분은 날아가고 안 좋은 맛만 남게 되는 꼴이다. 만약 개봉도 안 한 위스키 원액이 병 어깨선 밑으로 내려와 있다면, 보관이 잘못돼 있을 확률이 높다. 맛을 보장하기 어렵다.

위스키의 적정 보관 온도는 15~20℃로 권장한다. 즉 냉장이나 냉동 보관은 불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보관법은 구매 시 받은 상자를 버리지 말고 그대로 포장해 옷장에 넣는 것.

한번 병입된 위스키는 보관만 잘하면 무한의 수명을 갖는다. 100년 넘는 위스키들이 고가에 거래될 수 있는 이유다. 알코올 도수 20도가 넘어가면 세균이나 미생물이 번식하기 어려워 위스키가 변질될 우려도 없다.

개봉된 위스키는 ‘최적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이 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위스키가 절반 정도 남은 상태라면 2년 이내, 그보다 적게 남았다면 6개월 안에 모두 마시는 것을 권장한다. 병 내부에 원액보다 공기가 많아지면, 과도한 산화로 위스키가 고유의 풍미를 잃게 된다.

마시고 남은 위스키 병의 코르크는 따로 모아 두는 것을 추천한다. 새로 산 위스키 코르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기 때문. 위스키는 브랜드마다 병 입구 모양에 차이가 있어, 코르크를 다양하게 쟁여두면 최악의 상황도 피해 갈 수 있다. 유비무환.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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